03. 객식구

by IndigoB

방안 깊숙이 들어온 아침 햇살이 내 두 눈을 따갑게 찔렀다. 순식간에 시간을 건너뛴 듯한 느낌이 들어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잠에서 깨기 바로 직전까지 이상하고 요란한 꿈을 꿨더니 정신이 멍했다. 그런데 이런 꿈은 임신한 여자나 꾸는 태몽이 아닌가. 설마, 울 엄마가 또?



순간 나도 모르게 고갤 휙 돌렸다. 바로 곁에 큰언니가 누웠고, 옆에 나란히 누운 엄마가 드르렁 소릴 내며 고단하게 자고 있었다. 숨 쉴 때마다 위로 올라왔다 아래로 수욱 꺼지는 엄마의 아랫배에 자꾸 눈길이 갔다. 설마, 설마 할 일이 진짜 일어나진 않겠지. 코 고는 엄마 품에 어린 막내가 숨을 쌕쌕 쉬며 잠들어 있었다. 엄마와 아기, 둘이서 교대로 내는 소리가 희한하게 잘 어울렸다. 그 소리가 햇살이 내비치는 방 안 공기 중에 노랫곡조처럼 둥둥 떠다녔다. 나는 그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일순간 정신이 퍼뜩 들었다.


( 엥, 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허는겨. 에잇! )


부르르 몸서리를 치고 고갤 좌우로 흔들었다. 그때였다. 바깥에서 사람 발자국 소리 같이 부스럭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귀를 쫑긋 세웠다. 엄마와 아기, 언니와 여동생이 빽빽이 누운 비좁은 틈을 조심스레 비집으며 조금씩 무르팍으로 문 앞으로 나아갔다. 벌어진 방문 틈새로 빼꼼히 밖을 내다보는데, 마당 한가운데 쪼그리고 앉은 아버지 뒷모습이 보였다. 새우 마냥 구부리고 앉아 아버진 한 곳을 빤히 살펴보고 있었다. 좁은 문틈으로 가려져 정확히 뭘 보고 있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나는 방문을 살그머니 열고 밖으로 나갔다.

파닥, 파드닥 소리가 들렸다. 난 소리가 이끄는 대로 저절로 발길을 옮겼다. 이틀 전 다리 하나가 부러진 채 아버지의 손에 들려왔던 제비가 날개를 파르륵 파닥이고 있었다. 상처가 덜 아문 다리로 바닥을 디디며 날갯짓하니 매번 중심을 잃고 픽 쓰러졌다. 둥지에서 나오려다 바닥에 떨어진 제비를 아버지가 발견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아버지가 지극정성으로 잘 돌봐서 그런지 다친 다리가 처음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아버지가 물끄러미 제비를 쳐다보다 곁에 붙어 앉은 나를 돌아봤다.

- 용순아, 욘석 다리가 제대로 잘 아물고 있나부다. 많이 좋아진 거 같제?

- 아부지, 아직 덜 나은 것 같은디 자꾸 요로케롬 움직여서 상처가 덧나믄 어째요.

- 걱정허지 말어, 조금씩 움직이는 것도 괜찮여.


- 그러나 저러나, 뭘 좀 줘야겠네요, 제비 배고프겄다.

나는 벌떡 일어나 마당을 가로질러 광문을 열고 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한쪽 벽에 걸린 호미 자루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마당 앞 큰 감나무로 가서 그 아래를 호미로 푹푹 팠다. 며칠 사이 내린 비가 땅에 스며들어 흙이 부드럽고 촉촉했다. 파놓은 흙을 살짝 옆으로 물리고 직접 두 손으로 구덩이를 파보았다. 예상대로 통통하게 살이 오른 지렁이가 흙속에서 크게 몸을 흔들며 꿈틀댔다. 움직일 때마다 비릿한 흙냄새가 땅에서 훅 올라왔다. 난 검지와 엄지를 집게처럼 오므려 겁 없이 무턱대고 지렁이를 집어 들었다. 그것이 도망가려고 활어마냥 격렬하게 몸을 비틀며 팔딱였다. 나는 미끄덩한 지렁이를 놓칠세라 종종걸음으로 제비가 있는 데로 가 제비 앞에 보란 듯이 내려놓았다. 제비가 그걸 슥 쳐다보더니 순간적으로 작고 까만 눈에 빛이 반짝였다. 제비가 몸을 일으켜 부리로 지렁이를 틱, 틱 하고 쪼았다. 지렁이가 도망가는 모습을 보고, 내가 잽싸게 도로 잡아다 제비 앞에 또 내밀었다. 제비가 용기를 얻은 것처럼 이번엔 지렁이를 힘 있게 부리로 덥석 물어 입속으로 밀어 넣고 꿀꺽 삼켰다. 제비와 나를 바라보던 아버지가 내 뒷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흐뭇하게 미소 짓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나도 배시시 웃었다. 제비가 얌전히 긴 꼬리를 늘어트리고 앉아 우리 둘을 쳐다봤다.

일러스트 이미지 출처 - Fixabay.com


문득 방 안에서 어머니가 언니들을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제비를 살포시 들어 올렸다. 제비는 아버지에게 반항 한번 안 하고 제 몸을 내맡겼다. 야생 제비가 사람 손에 의지하는 모습이 볼수록 신기했다. 지붕 처마 제비 둥지로 간 아버지가 발치에 놓인 크고 널찍한 돌에 두 발을 디뎠다. 그리고 제비를 조심히 둥지 안으로 밀어 넣었다. 감사 인사라도 하는 건지 제비가 째짹 울음소리를 냈다. 아버지가 그 소리를 듣자마자 '생명을 구해준 은인을 용케 알아보는 기특한 제비'라고 하며 크게 기뻐했다. 아버지는 다친 제비를 구해준 그 일이 생애 가장 보람 있고 잘한 일이라 여기는 듯했다.


(오지랖이 바다 같은 울 아부지, 제비한티 쏟는 정성, 울 어무니랑 가족들헌티 쏟으믄 좀 좋을꼬?)


날 보며 함박웃음 짓는 아버지를 보니, 나는 이런 생각을 아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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