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아기가 고구마 줄기처럼

by IndigoB

아침 상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간 지 오 분도 채 안 됐을 때다. 어머니가 마치 삶은 호박이 터진 것 같은 기막힌 표정으로 방문을 박차고 나왔다. 앞치마에 손을 슥슥 문지르며 방을 향해 냅다 고함을 지르는데, 그 기세에 마당에 서 있던 감나무 잎이 다 떨릴 지경이었다.


- 고놈의 제비가 밥을 먹여주나, 옷을 입혀주나! 제비 다리 고친다고 지극정성이더니, 정작 지 새끼들 입에 거미줄 치는 건 안 보이나벼? 돈 버는 데 그 정성이믄 벌써 대궐 같은 기와집에서 살았겄네!


봉당마루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풀죽을 나눠 먹던 식구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 와중에도 나는 숟가락을 놓지 않았다. 이 집에서 살아남으려면 일단 배부터 채우고 봐야 하니까. 사실 아버지가 제비에 목매는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다리 부러진 제비놈한테 귀한 고약을 발라줄 때만 해도, 우리 아부지 참으로 심성이 비단결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배은망덕한 제비 녀석이 완쾌되자마자 야반도주하듯 사라졌으니, 아버지는 지금 나라 잃은 설움보다 더한 상실감에 빠진 거다.


- 어무니, 그 제비 놈 은혜도 모르고 튀었구먼요. 진작에 털 뽑아 솥에 넣었으면 우리 식구들 고기 구경이라도 했을 거 아녀요.


- 오라버니, 그 쬐깐한 새 한 마리로 무슨 배를 채워여? 이제 살만하다 싶으니께 날아간 거겠지.


철없는 큰오빠가 한마디 거들자, 둘째 언니가 얼른 어머니 손에 숟가락을 쥐여주며 달랜다.


- 엄니, 화내면 괜히 기운만 빠져여. 아부지는 무슨 생각으로... 일단 이거라도 좀 잡숴요.


- 당장 내일 끼니 걱정에 한숨이 절로 나오는디, 저 양반이 내 속을 뒤집는 데는 도가 텄어!


어머니의 한탄 속에 동생들은 빈 그릇만 박박 긁다가 눈치를 보며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동생들 손에 호미를 들리고 산으로 향했다. 약초를 캐서 내일 저잣거리 약방에 팔아 끼닛거리를 구해올 계획이었다. 어머니와 작은 오빠, 언니들은 남의 집 밭에 나가 품을 팔아올 채비를 했다. 둘째 큰 오빠는 글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벌써 방으로 들어갔다. 양반입네 하고 방구석에서 '하늘 천 따지'만 읊고 있는 큰오빠를 보면 한 대 쥐어박고 싶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직도 그놈의 양반 족보가 밥 먹여줄 거라 믿으신다. 달랑 낡은 초가집 하나에 열네 명 식구들이 비좁게 살고 있는데, 과연 양반이라 할 수 있나. 난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당장 끼닛거리를 걱정하는 형편에 글공부가 웬 말인가.


우리 집이 이 꼴이 된 건 아버지의 그 '물정 모르고 비단결 같은 마음씨' 덕분이다. 옛날 옛적, 아버지가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실 때만 해도 당장 금의환향할 듯 기세가 등등했단다. 그런데 웬걸, 한양 바닥 투전꾼들한테 홀랑 속아 속고쟁이 한 장 못 건지고 상거지가 되고 말았다. 막상 어머니 볼 면목이 없어 이 집, 저 집 동냥으로 빌어 먹으며 돌아다녔다. 결국은 골병이 깊게 들어 삼 년만에 돌아오셨으니! 그런 줄도 모르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죽었나 살았나 밤마다 정한수 떠놓고 빌었는데 말이다. 미안했던 아버지는 차마 집으로 못 들어오고 남의 집 담벼락 밑에서 사흘을 쫄쫄 굶고 계셨단다. 아버지는 오랜 시간 길바닥에서 생고생을 해선지 만신창이가 되어 방바닥에 누워 있는 게 부지기수였다.


일러스트 이미지 - Pixabay.com


그런데 그날 이후로 우리 집에 돈과 쌀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반면, 신기하게도 아기가 고구마 줄기 잡아당기듯 줄줄이 태어났다. 땅을 파면 고구마가 나오는 것처럼 우리 집은 방을 치우면 애가 나오는 격이었다. 결국 어머니가 치마끈 질끈 동여매고 가장 노릇을 하게 된 것도, 다 아버지의 그 '비단결 같은 마음씨' 덕분(?)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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