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아빠 좀 말려줘

by IndigoB

사내는 태어나서 딱 세 번만 운다고들 했다. 세상에 나올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나라를 잃었을 때. 도대체 누가 그런 박절한 말을 시작했는지는 몰라도, 예전에 이웃집 할배가 누구한테 줘터져 울고 있는 손주 놈을 앉혀두고 호통치는 걸 엿들은 적이 있다. 그때 난 속으로 '내가 사내 아이로 안 태어난 게 천만다행이구먼' 싶었다. 슬퍼서 터져 나오는 눈물을 무슨 수로 틀어막는단 말인가.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좀 심했다. 명색이 한 집안의 가장인 남자가 계집애처럼 흑흑, 흐흐흑이라니, 눈물콧물 다 쏟아내며 우는 꼴이 괴상하기도 하고 흉하기도 해서 나는 한동안 멍청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문밖에서 동생들이 이 소릴 듣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나는 서둘러 아버지의 울음을 막기로 했다.


- 아부지, 아부지! 왜 자꾸 우셔여? 제가 이 죽, 동생들 멕인다고 혀서 그러시는 거예여? 알았어여, 제가 참말로 잘못했구먼여! 요 죽을 도로 따따시 뎁혀 올 테니께, 고거 잡숫고 제발 진정하셔여.


- 흑, 용순아, 그런 거 아녀... 배가 고파서 그런 게 아녀, 흐흑! 내가 요새 왜 이러는지 나도 몰겄구먼, 흑흑!


긁어 부스럼이었다. 달래려 들수록 아버지는 조부모님이 한꺼번에 돌아가신 사람마냥 더 서럽게 어깨를 들썩였다. 나는 골치가 아파 두 손으로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한참을 쩔쩔매며 서 있는데, 아버지가 슬쩍 눈치를 보더니 울음을 뚝 그치고 나직이 나를 불렀다.


- 용순아, 이리 온. 아비는 괜찮으니께 내 옆으로 와서 앉어.


눈두덩이 벌게진 아버지가 상체를 곧추세우고 가부좌를 틀었다. 딸내미 앞에서 모양 빠지게 마냥 울 순 없었는지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고놈, 제비 녀석 말여... 잘 날아갔겄제? 두 다리로 힘차게 디디고 날개를 펼치야, 저 하늘 높이 떠오를 터인디. 암만 말짱히 나아서 가야지, 다른 동무들헌티 설움 안 받고 살 거 아녀. 병든 몸뚱이로 돌아가 봤자 괜히 괴롭힘이나 당하고 오래 못 살 게 뻔한겨.”


- 쳇, 아부지는 제비가 고로케 좋아여? 걱정돼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만큼?


- 우헷, 뭔 소리여. 울긴 뭘 울어.


- 에잉? 좀 전까지 흑흑, 하며 울었잖여? 난 또, 지가 죽 들고 간다고 서러브서 우시는 줄 알았져. 참나, 실은 제비 걱정돼서 우시는 거였잖여.


- 용순아, 아부지는 그냥 옛날 생각이 잠깐 나서... 그, 집 떠나 있을때 춥고, 배고프고, 몸까지 아파설랑 엄청 서러웠던 거... 그랬던 게 갑자기 생각이 나서...


- 춥고, 아니, 지금은 봄이라 안 추운께! 암튼 배고프고 아픈 건 지금도 매한가지 아닌감여? 아부지는 맨날 아프시니께... 뭘 새삼스럽게 우셨대여?


내 시큰둥하고 당돌한 대거리에 느닷없이 한 방 얻어맞은 얼굴로 아버지가 날 빤히 쳐다봤다. 넋이 잠시 나간 듯 멍한 표정이었다. 어쩌면 그때 아버지는, 작고 어렸던 셋째 딸내미가 언제 이렇게 훌쩍 커버렸나 싶으셨을 거다. 아부지, 난 벌써 열두 살이예여. 알 만한 건 다 알 나이란 말여요. 아버지가 피식 웃으며 삐쩍 마른 손으로 내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나는 민망함에 고개를 비틀며 투덜거렸다.


- 아이 참, 아부지 손등이 까칠혀서 머리카락 다 엉키잖어여! 안 그래도 집안 일 한다구 바빠 죽겠는디 머리까지 다시 묶어야 쓰겄네.


내 투덜거림에 아버지는 웃음을 머금은 채 손을 내렸지만, 이내 그 시선이 내 손끝에 머물렀다. 산나물을 캐느라 손톱 밑이 새까맣게 물들고, 풀독이 올라 거칠어진 손. 아버지는 잠시 말을 잊은 듯 눈을 떼지 못하다가, 방바닥에 내려놓았던 죽 그릇을 조심스레 내 두 손에 얹어 주었다.


이미지 생성 - Google_Nano Banana


- 얼른 이거 가져가서 동생들이랑 나눠 먹어. 용순이 너헌티... 이 애비가 참말로 미안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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