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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명 이영주 Feb 26. 2019

카메라

일요일의 도둑

아버지가 예배하러 가겠다고 한 것은 오랜만이었다. 어머니가 많이 기뻐했다. 장티푸스로 고생한 뒤 신께 감사하는 마음이 솟았는지도 모른다. 다들 기쁜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점심때가 지나 돌아온 집은 현관 문이 빼꼼히 열려 있었다.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테라스 문을 열자 마루 위에 신발 자국이 어지러웠다. 안방 장롱문이 열려 있었다. 도둑이 들었다. 아버지는 장롱 안과 벽장을 살펴본 뒤 없어진 물건 중 값진 것은 캐논 카메라뿐이라고 말했다. 그가 아끼던 물건이었다. 그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이 많았고 아직도 유품으로 꽤나 남아 있다. 낭패였다. 약간의 현금이 없어졌지만 큰돈은 아니었다. 파출소에 신고했다. 아버지는 카메라의 일련번호를 따로 적어둔 모양이었다. 장물로 흘러나올 경우 추적할 단서가 될만한 것이었다. 집안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집으로 찾아온 순경은 일단 이런저런 내용을 받아 적었다. 발자국을 사진 찍고 가족들의 진술을 채집했다.


사나흘쯤 뒤 경찰은 머지않은 옆 동네에서 용의자를 찾아냈다. 운동화 밑창 모양이 들어맞은 전과자라 했다. 사진기는 없었다. 일련번호는 제 구실을 하지 못했다.  한동안 전국의 전당포를 통해 제보를 기다렸지만 결국 카메라는 돌아오지 않았다. 용의자는 주거침입 및 절도죄로 구속되었다. 젊은 사람이었다. 70년대 말의 지방 도시에서는 흔한 사건이었고 흔한 결말이었다. 아버지가 그 도둑을 직접 만났는지는 또렷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경찰서에서 만났을 것이었다. 무슨 말이 오갔는지 모른다.


그 일 후 아버지는 한동안 예배하러 가지 않았다. 나이가 들고 아내와 사별하자 그는 신과 대화를 재개하였고 십 년쯤 뒤 직접 신을 만나러 떠났다. 하필 왜 예배하러 간 날 카메라를 뺏아갔느냐고 따졌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어느 여름 한낮에 있었던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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