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단팥죽
아침나절 어느 동네 골목을 지나는데 방앗간 냄새가 났다. 내게 있어서 방앗간 냄새란 두 가지 정도의 인상이다. 하나는 군대 시절 취사장에서 늘 나던 경유 때는 냄새 그리고 다른 하나는 쌀가루를 뜸뜰여 쪄내는 맛있는 내음이다. 크든 작든 방앗간은 이 두 가지 냄새를 풍긴다. 작디작은 골목길 안쪽의 작은 방앗간을 지나며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내 고향 S시 옛 중앙시장(지금은 패션의 거리) 통에 화월당 과자점이 있었다. 단팥죽과 찹쌀떡이 맛있었는데, 과자점 옆 좁은 골목길에 주방으로 통하는 문이 있고, 이른 새벽이면 맛있는 냄새가 수증기와 함께 모락모락 피어오르곤 했다. 어느 겨울 이른 아침 어머니와 나는 막 나온 찹쌀떡을 사러 그곳에 갔는데, 그 날 먹었던 따뜻한 찹쌀떡과 단팥 알갱이가 살아 있는 단팥죽 맛을 평생 잊지 못하고 있다. 어느덧 어머니는 천국에 가셨고 나는 아직 살아서 단팥죽 집을 간혹 기웃거리곤 한다. 어제는 여의도에 최근 문을 연 단팥죽집에서 아내와 함께 팥빙수를 시켜 먹었는데 황홀한 맛이었지만 어쩐지 어릴 적 먹었던 그 맛에 미치지는 못했다. 물론 이 곳의 팥빙수가 훨씬 고급일 게 분명하고 잘 차려진 테이블 세팅에 심지어 얼음 가루는 분유를 탄 것인지 연유를 탄 것인지 녹아내리면 우유가 되는 그런 멋진 것이었고 단팥 앙금의 맛 역시 무엇에 비할 수 없이 맛있었지만 뭔가 한 가지 부족했다. 그것은 추억의 맛, 기억의 맛일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