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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명 이영주 Feb 26. 2019

내시경

체(滯) 내리는 노파

꿱꿱!
아이고. 나 죽네, 나 죽네!
웩, 우웩!

그렇게 나는 울부짖었다. 할멈은 내 몸부림 따위에는 아랑곳 않고 기다란 고무호스를 내 목구멍을 쑤셔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어머니는 내 등 뒤에서 내 팔을 붙잡았다. 눈물 때문에 부옇게 돋보기처럼 휘어져 흐릿하게 뒤틀려 보이는 하늘이 야속했다. 우물 가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하루 전날 나는 우리 집에서 벌어진 잔치였는지 아니면 남의 집에서 벌어진 잔치였는지는 모르지만 뭔지 모를 음식을 맛나게 먹은 뒤 급체를 했다. 사실, 잔치 음식을 먹어서였는지 아니면 집에서 그저 상한 음식을 먹은 것인지조차 이제는 가물하다. 어쨌든 나는 체해서 많이 아팠다. 밤새 복통에 시달렸고 아침이 되어 핼쑥해진 모습으로 식은땀을 흘렸을 것이다. 어머니는 수소문 끝에 체한 것을 잘 다스릴 줄 안다는 노파를 찾아냈다. 나는 어머니 손을 잡고 갔는지 어머니 등에 업혀 갔는지 모를 만큼 몽롱한 상태로 노파 앞에 섰다. 노파는 누렇게 뜬 내 얼굴을 힐끗 보더니 말없이 그저 방안으로 잠시 사라졌다가 작은 바구니를 들고 나타났다.

어머니는 내 등 뒤에서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듯하더니 갑자기 두 팔을 억세게 잡아 붙들었다. 나는 옴짝달싹 못한 채로 우물가로 질질 끌려갔다. 노파는 놀란 토끼 같은 내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아가리를 열어 놋수저로 혓바닥을 누르는가 싶더니 무언가를 쓱 내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나는 물에 빠진 것처럼 숨을 쉬지도 못할 것 같은 공포에 휩싸여 나 죽는다고 울부짖었다. 노파는 인정사정없이 갈색 고무호스를 몇 차례 내 목구멍 속에서 움직이더니 다시 쓱 빼냈다. 나는 목젖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뭔가를 우물 가 도랑에다가 게워냈다. 그리고 그 옆에 물에 젖은 빨래처럼 널브러져 울부짖었다.


나 죽네.

나 죽네.

아이고 나 죽네.


노랗고 흐물흐물한 것을 토한 뒤 체한 것은 거짓말처럼 내려갔고 늘어져 있던 나는 종종거리며 집으로 돌아와 숭늉 같은 것을 먹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노파에게 돈은 쥐어주며 고맙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 뒤로 자라면서 그때처럼 급체를 한 적은 별로 없었다. 더 나이가 들어 중년에 접어들자 간혹 급체한 적이 있으나 민간요법의 대가인 노파를 찾은 적은 없다. 간혹 위장 내시경 검사를 받게 될 때마다 나는 수면 내시경을 원했다. 침대에 모로 누워 마취 마스크 같은 것을 쓸 때마다 가물거리는 의식 저 너머에서 주름 많고 반백의 머리를 쪽진 표정 없는 노파의 얼굴이 내 얼굴 위로 커다랗게 다가오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깨어 보면 노파는 간 데 없고 간호사가 어지러우면 말하라고 했다. 간호사는 다행히 대체로 젊어서 노파를 떠올리게 하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생전에 가끔 그때 일을 말하며 나를 놀리곤 했다. 그때 누렇게 뜬 얼굴로 나 죽는다고 울부짖던 것이 어느새 다 컸다며 어른 행세하려 한다며 때로는 가소롭다는 듯 또 때로는 대견하다는 듯 웃곤 했다. 노파는 어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떴을 것이다. 그녀가 갈색 고무호스를 꽂아 살려 낸 아이며 어른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적쟎이 많을 것이다. 그들 중 상당수는 노파를 여러 번 찾아갔을 수도 있다. 나는 다시 그 노파를 찾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여겼다. 그때 그 노파는 갈색 고무호스를 잘 소독해서 썼을까 생각하니 괜히 목젖 밑이 가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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