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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명 이영주 Jan 15. 2019

사당역

교장의 훈시

추운 월요일 아침이었다. 교련 조회는 열병식이 절정이었다. 사열을 마친 뒤 학생 연대장은 우렁차게 외쳤다.

"훈시! 교장선생님께 대하여 경례!"

교장은 비대한 사람이었다. 그가 일생을 바쳐 온 교육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비대했을 것이다. 목소리는 여전히 카랑카랑했다. 많은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날 아침 조회의 훈시는 내게 오래 기억되었다.

"여러분,
네 시간을 자면 붙고
다섯 시간을 자면
떨어집니다"


그 말의 앞 뒤로 많은 말들이 이어졌겠지만 내 귀에 서리처럼 내려앉은 말은 그뿐이었다. '오늘도 세계를 주름잡기 위하여'라는 교훈이 새겨진 커다란 바위를 스쳐 지나며 등교하고 하교했다. 그러나 나는 늘 다섯 시간 이상을 잤고 결국 그의 예언대로 원하는 대학에 낙방했다. 교장이 혜안을 가졌음이 증명된 것이다. 같은 훈시를 듣고 등하교했던 많은 친구들은 대학에 붙건 떨어지건 교장의 예지력을 증명하는 빅데이터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어지럽게 돌고 돌아 어느 항구에 불시착했다. 파도를 타고 멀미를 하는 동안에는 죽을 것만 같은 순간도 있었지만 항구에 이르자 언제 그랬냐는 듯 이내 다 잊어버리고 항해 자체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교장은 아마도 이미 고인이 된 지 오래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어느 지하철역을 지날 때마다 그의 훈시 중 바로 그 대목을 떠올리곤 한다.


사당(四當).
오락(五落).



(사진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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