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 가을 나는 동네 개울에서 아이들과 놀다가 개울에 거꾸로 처박힌 뒤 줄곧 코피가 잘 나서 결국 친구들보다 1년 늦게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은 동네에서 나와 같이 놀던 아이들에게 형이라고 불렀고 나는 그 형들의 친구였다. 아이들은 혼란스러워했고 나는 어정쩡한 입장이 되어 있었다. 동네에선 형이었고 학교에선 친구였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아이들은 어색해했다. 민호는 내 학교 친구의 사촌 형이었고 친구의 동네에선 가가호호 친척들이 모여 살다 보니 친구와 민호네는 사실 한가족처럼 지냈다.
쉬는 날에 가끔 민호네 동네로 놀러 갔다. 민호의 사촌 동생인 내 친구 집에는 재미있는 책들이 많았다. 친구의 아버지도 삼촌도 모두 엘리트였다. 하지만 출세와는 거리가 멀어서 말하자면 똑똑하고 배운 사람들이었지만 집안이 아주 넉넉하지는 않았다. 대가족이 대체로 그렇듯 집안은 늘 화목했다. 여섯 살 손아래 여동생뿐이었던 나는 형들이며 누나며 젊은 삼촌들이 많은 친구네 집안 분위기가 좋았다. 친구와도 그럭저럭 사이가 좋았다. 하지만 민호는 입장이 달랐다. 동네에서야 친구로 지내는 터였지만 동생과 한 반 친구인 내가 마냥 친구로만 보일 리 없었다.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학교에서야 그저 친구로 지내면 되었지만 집안에서는 엄연히 형의 친구니 나도 형이었다. 나는 아무래도 좋았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난처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2학년 겨울 방학 중 시험을 보게 하고 월반시켰다. 그러나 내게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았다. 3학년 학기초에 우리는 운동장에 모여 다음 학년 담임이 될 선생님이 각 반을 돌며 제 이름을 불러주기를 기다렸다. 하나 둘 아이들이 불려 갔지만 내 이름은 끝까지 불려지지 않았다. 내가 불려 간 교실은 이상하게도 3학년이 아니라 4학년 교실이었다. 물론 익숙한 얼굴들이 꽤 보여서 안심은 되었다. 휴일이 되고 다시 민호네 동네로 놀러 갔을 때 이제 나는 명실공히 민호의 친구이자 친구의 형이 되어 있었다. 이제 좀 정리가 되었을까?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민호는 민호대로 내 친구는 친구대로 내 위치를 두고 어색하고 불편했던 것이다. 민호는 나를 점점 멀리했고 친구는 여럿이 만날 때를 빼고는 나를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중학교에 가고 고등학교를 갔다. 한 때 친구로 지내던 아이들은 공식적으로 졸업 연도가 다른 후배들이 되었고 나는 그들의 형들과 동기였다. 나를 뺀 아이들은 늘 어울려 다녔다. 간혹 나도 그들 틈에 끼어 놀았다. 그때마다 처음 얼마 동안은 호칭이 어색했다. 존댓말도 아니고 반말도 아닌 이상한 어투가 어색하디 어색하게 허공을 몇 차례 오가다가 내가 먼저 친구로 대하면 차차 말이 편해졌다. 그러다가 우연이라도 민호나 민호 친구들과 마주치면 다시 말은 꼬이기 일쑤였다. 그렇게 우리는 차차 멀어졌다. 원래부터 뭉쳐 다니는 걸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는 성탄절이나 명절 같은 때 친구들을 만났다. 분명하게 어색했다.
사회인이 되고 나서 친구들을 서울에서 만났다. 동창이나 동문들을 연결해주는 동호회 모임이 인터넷을 타고 붐을 이루던 시절이었다.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 채 만난 친구들 몇몇은 어떻게 말을 터야 할지 궁색해했다. 한두 번 만난 뒤로 자연스레 얼굴 보는 만남은 없어지고 전화나 문자로 안부를 주고받았다. 쉰이 가까워 오자 그것도 사실상 끝이었다. 몇 년에 한 번 전화번호를 확인하는 정도였다. 아버지의 장례식에 나는 그들 중 아무에게도 나는 연락을 넣지 않았다. 그래도 동기들은 삼삼오오 서로 연락이 닿아서 조문을 왔다. 민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더 이상 올 수 없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친구들에게 민호의 안부를 묻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