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소 주인
아버지가 우리 집 텃밭을 갈아엎고 상가를 낸 것은 내가 고등학교 시절이었을 것이다. 큰길 쪽으로 가게 두 칸을 내고 안 쪽으로 살립이 가능한 방과 부엌을 두었다. 두 가게 중 소씨네 자매 집 대문 쪽으로는 따로 부엌이 딸린 단칸방을 내어 간혹 내가 지내기도 했고 때로는 세를 내주기도 하였다. 작은 쪽문이 있어 마치 독립된 공간처럼 느껴지는 그런 곳이었다. 어차피 뒷문으로 들어오면 재래식 화장실을 지나 우리 집 뒷마당으로 이어지는
그런 구조였다.
세탁소 주인 내외는 얼굴이 허옇고 둘 다 비쩍 마른 사람들이었다. 아버지가 세를 얼마 내 내었는지는 아직도 모르지만 비싸게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탁소는 한동안 분주하였다. 그것도 잠깐이었는지 이내 죽는소리가 들렸다. 겨울에 세탁소에 들러보면 늘 따뜻했다. 아세톤 냄새가 늘 현깃증이 나게 했는데 한참 있다 보면 붕 뜨는 느낌이 들고 몽롱해지기도 하는 것이 꼭 기분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천정 아래로 드리워진 스팀 호스에 연결된 다리미의 레버를 누르면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데 그 소리는 마치 증기기관차 소리 같기도 하였다. 치익 하고 날 때도 있고 길게 내뿜으면 쉬익 하는 소리로 들리기도 하였다. 아저씨는 다림지를 하는 모습이 주 배역이었고 아주머니는 바느질이 주 배역이었다.
여름이 되면 세탁소는 유리문을 열어두고 하얀 러닝셔츠 차림의 아저씨는 여전히 스팀 다리미질에 여념이 없었다. 이상한 것은 더운 여름날인데도 아저씨의 넓은 이마에는 좀처럼 땀이 맺히지 않는 것이었다. 세탁소는 늘 훈훈한 스팀이 가득한데도 아저씨는 한결같이 허연 얼굴이었다.
여름이면 아저씨네 살림집 방 모서리에는 밥알이 얼마간 들어 있고 물이 절반쯤 담긴 하얀 종지가 놓여 있었다. 밥을 먹다 남긴 것일까 궁금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파리약이라 했다. 누눈가 모르고 둘러 마시기라도 하는 날에는 사단이 날 물건이 버젓이 방구석에 놓여 있다니 기겁할 노릇이었지만 그 집에서 누가 널브러져 실려 나가거나 한 것은 보지 못하였다.
세탁소는 서너 해 뒤에 다른 곳으로 이전하였다가 다시 우리 가게로 되돌아왔다. 내가 타지로 나가 살게 된 뒤 간혹 집에 들르니 세탁소는 여전히 김을 내뿜고 있었고 비어 있던 옆 가게 유리문에는 성인용품점이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붙어 있었다. 다시 집에 들렀을 때는 세탁소가 있던 자리에 오토바이 수리점이 들어서 있었다. 언제 가게가 바뀌었느냐고 나는 묻지 않았다.
(사진출처: 필름메이커스커뮤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