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의 JH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는 또래보다 한 두 살쯤 나이를 더 먹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친구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는 그런 줄 알고 지냈다. 그는 얼굴이 허얬고 체육시간에는 벤치에 앉았다. 선생들은 그를 체벌하지 않았다. 그는 성적이 우수한 편이었고 대체로 말이 없었다. 그러니까 중학교 2학년 봄 소풍 때 찍은 사진 속에서 그는 다소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은 늘 힘이 넘쳤다. 학교 건물을 지은 지 10년쯤 지난 유리창 많은 건물이었다. 나는 청소 시간에 간혹 유리창을 닦으러 몸을 반쯤 유리창 밖으로 내밀고 아래를 내려다보곤 했다. 3층에서 내려다본 땅바닥은 마치 지옥처럼 멀어 보였다. 떨어지면 아마도 땅바닥에 개구리처럼 혹은 깨진 계란처럼 납작하게 깨질 것만 같은 까마득한 높이였다. 그래도 청소 시간에 몸을 반쯤 내밀고 유리창을 닦거나 하는 일은 그만두지 못하였다. 유리는 끈적끈적한 모르타르 비슷한 것으로 철로 된 틀에 고정되어 있었는데 한 여름 뙤약볕에 약간 녹아내린 그것을 무심코 맛보았을 때 쏘는 듯한 그 맛은 아직도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반 아이들은 하릴없이 늘 장난을 쳤다. 복도는 왁스칠이 잘 먹어서 늘 반들거렸고 스케이트 타듯 미끄럼 타는 아이들의 양말과 바지 무릎 언저리는 늘 번들거렸다. 그리고 간혹 구멍이 나기 일쑤였다. 수의사였던 아버지에게 어깨너머로 배운 메스질로 나는 아이들의 무릎이며 발바닥에 박힌 나뭇가지를 제법 능숙하게 뽑아내 주곤 하였다. 하지만 그 아이는 그런 장난에서 늘 예외였다. 행여 아이들끼리 드잡이를 하며 놀다가 엉겁결에 그에게 접근할라치면 그 자신은 물론 짝꿍 아이까지 정색을 하고 말렸다. 나중에 들은 걸로는 생물시간에 이름만 들었던 혈우병 환자라 했다. 나는 그게 어떤 병인지 잘 몰랐다. 그저, 피가 나면 잘 멈추지 않는다더라 하는 정도였다. 나 역시 코피가 한 번 나면 잘 멈추지 않아서 밤새도록 바가지에 코피를 받아내던 경험이 있었기에 만약 그 아이가 코피가 나서 결코 멈추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얼굴이 허옇게 돼서 죽는 것은 아닐까 약간 겁이 나는 정도였다. 정년을 십 년쯤 앞둔 어느 여름 오후 공공도서관에서 인체에 관한 도해집을 펼쳐 보던 중 우연히 혈우병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자 불현듯 그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혈우병은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라던데 아직 멀쩡하게 잘 살아 있는 것일까? 모기에 물려도 피가 멈추지 않아서 결국은 서른 살이 채 못되어 죽어버린 것일까? 그랬다면 이미 땅 속에서 분해되었을 것이다.
그 아이와 나의 마지막 기억은 봄소풍이었다. 당시 담임선생은 잘 마른 나뭇가지로 만든 지팡이를 한 손으로 짚고 사진 속에서 지친 모습으로 바위에 걸터앉았다. 야구 모자챙 밑으로 그림자가 져서 그의 표정을 제대로 읽을 수는 없다. 마흔 중반으로 보이는 그는 어느 정도 삶에 지쳐 있는 것이었을까? 까까머리 중학생들과 봄 소풍으로 오른 봉화산 정상 너른 벌판까지 오르기가 조금 힘들어서였을까? 그렇게 그는 조금 지친 모습으로 사십 년 가까이 사진 속에서 나올 생각을 않는다. 어지간히 건강체가 아니라면 담임선생은 이미 타계하였을 것이다. 나의 혈우병 소년은 살아 있다면 쉰 살이 조금 넘었을 것이다. 혈우병 치료약이 개발될 때까지 살아 있겠다고 작정했다면 분명 살아 있을 것이다.
[사진출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