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때 교실은 강당이 붙은 제일 후미 진 안쪽 건물 일층이었다. 이층은 미술실, 삼층은 음악실이 있는 그런 곳이었다. 강당과 교실 사이 이층에는 도서실도 있었다. 나로서는 좋은 자리이기도 했다. 운동장 쪽으로 나가면 운동장이 왼쪽으로 펼쳐지고 바로 앞은 담벼락을 따라 멀리 과녁을 세워두고 연습중인 양궁부의 연습장이었다. 나는 틈날 때마다 도서실이며, 미술실이며 공부와는 상관 없는 곳을 기웃거렸다. 운동장 시멘트 스탠드에 앉아서 양궁부의 활쏘기를 구경하기도 했다. 이 때 화살의 움직임에 대한 흥미로운 발견도 했다. 이학년 때 내 성적은 최하위권을 맴돌았다. 교복 자율화가 시행되었지만 아직 두발 자유화는 안 된 시기여서 남방 셔츠를 입고 밖을 나가면 마치 조폭 조무래기처럼 보이던 그런 시절이었다.
우리 반에는 또래보다 두 살 쯤 나이 많은 아이가 있었다. 그는 좋은 아이였다. 늘 미소 띤 얼굴에 체격도 좋았다. 성적도 제법 좋았다. 운동도 잘 하는 편이었다. 담임 선생은 그 아이 주변에 앉은 학생 몇을 따로 불러 조용히 일렀다. JH가 몸이 좀 안좋아서 가끔 쓰러진다. 그러니, 학교에 있는 동안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면 혀를 깨물지 않도록 입을 벌려 수건 따위를 물려주고, 그냥 가만히 두어라. 그러고 나서 담임에게 조용히 알려라. 반 아이들 모두에게 JH가 깬 뒤에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게 잘 일러라. 그런 취지의 알림이었다. 나는 무슨 말인지 잘 몰랐지만 어쨌든 기억해 두었다. 잘 생기고 마치 형처럼 의젓한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이상한 일이 벌어진단 말일까? 그저 의아했지만 신경 쓸 일이 당장 생기지는 않았다. 그렇게 봄날은 흘러갔다.
어느 날 쉬는 시간에 쿵하는 소리에 다들 놀라 소리나는 쪽을 돌아 보았다. 그가 넘어져 있었다. 눈을 뒤집어 까고 경련을 일으켰다. 잠시 주위가 조용해졌다. 몇 초 쯤 흘렀을까? 몸짓 빠른 아이 몇이 들러 붙어서 입에 무언가를 물리고 웅성거리는 아이들을 자기 자리로 돌려 보냈다. 오분이나 십분 쯤이었을까? 아무튼 잠시 후 그는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더니 주섬주섬 물건들을 챙겨 교실을 나갔다. 며칠 동안 결석이었다. 반장인지 분단장인지 하는 학급 간부와 두어 명이 그의 집을 찾아갔다. 내가 왜 거기 끼어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의 집은 시내에서 약간 들어간 계곡 쪽에 있는 저택이었다. 아버지가 꽤 큰 사업을 하신다는 소문을 들었다. 일하는 아주머니가 있었고 어머니가 간식을 내주었다. 그 날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그 부분이 백지처럼 하얗다. 그 뒤 JH는 다시 학교에 나왔고 내가 기억하는 한 그 해에 다시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한 번 쯤 더 그의 집에 놀러갔던 것같지만 딱히 기억나는 일은 없다. 그 후에도 가끔 그는 결석을 했다. 고등학교의 일상은 늘 시간표대로 움직였다. 교실 뒤쪽의 키큰 아이들은 봉걸레 자루를 기타 삼아 Bad Case of Loving You를 신나게 불러대며 여고생들과 미팅시간표를 짜기에 바빴고, 앞쪽 아이들은 사전을 씹어먹는다느니 모의시험지를 몇 번을 풀었다느니 하는 주제들로 나름 진지했다. 키 순으로 매겨진 번호도 중간, 성적도 과목마다 들쭉날쭉, 노는 데 딱히 끼지도 않은 나는 늘 탁구공처럼 여기저기로 튕겨지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자신 있다고 생각했던 한자 시험을 망쳐서 책상 위에 올라가 무릎을 꿇고 허벅지 위에 매를 맞았다. 선생은 배려심이 있었는지 곧 여름이 오면 반바지를 입을 수 있도록 종아리 대신 허벅지를 때려 주었다. 대신 아프게 틀린 문제 갯수만큼 아주 공정하게 때려주었다. 허벅지 위에 생긴 보라색 멍은 점점 쑥색이 되더니 나중에는 검게 변했다가 차차 사라졌다. JH는 성적이 딱히 나쁘지 않아서 매를 맞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이학기부터인지 삼학년에 올라가서인지 JH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교장선생은 월례조회 때 사당오락(四當五落: 네 시간만 자고 공부하면 대학에 합격하고 다섯 시간 씩이나 자면 떨어진다는 뜻)이라며 훈시했다. 나는 늘 다섯 시간을 넘게 자서 교장 선생의 훈시가 맞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사례를 하나 보탰다. 아마 JH는 우리와 같은 졸업생 명단에 끼지 못했다. 나중에 졸업을 하였는지는 모른다. 집안 사정이 좋았으니 고등학교 졸입이니 대학이니 하는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내가 몰라서 그렇지 좋은 학교에 진학했거나 혹은 외국으로 유학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에 관한 기억은 내 허벅지의 멍자욱처럼 진해졌다가 차차 흐려져서 결국 없어졌다. 다만, 경련에서 깨어난 뒤 잠시 동안 의자에 앉아있을 때 힐끗 보았던 초점을 잃은 듯한 그의 표정은 어렴풋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