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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명 이영주 Nov 06. 2018

가죽점퍼

할리데이비슨의 남자

훈남 이미지의 그는 경찰, 그것도 교통경찰이었다.


'할리 데이빗슨을 몰고 헬멧에 긴 가죽장화를 신고 중저음의 굉음을 내며 출동하는 모습은 멋졌다'라는 건 오로지 상상이다. 내가 아직 어렸을 때 그는 순찰 중 사고로 순직했다. 자세한 정황은 알지 못하나 고속버스를 단속하던 중 접촉사고로 중심을 잃고 오토바이가 전복되고 뇌진탕으로 결국 별세했다는 게 내가 아는 바 전부다.


그러나, 사진 속에 남아있는 그의 모습은 훈남 이미지인 게 맞다. 키가 크고 검은 가죽점퍼 차림의 그는 그의 첫 딸이자 내게는 외사촌 누이동생인 갓난아이를 손에 안고 미소 짓고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그 가정은 적잖은 풍파를 겼었을 터였다. 외숙모는 늘 치열하게 살았고 자식들을 반듯하게 키워냈다.


손윗시누이였던 우리 엄마와 사이가 어땠는지는 속속들이 모른다. 그러나, 살가운 사이가 되기는 쉽지 않으리란 건 이 나라 백성이라면 누구나 어림짐작으로 알 터이다. 한 장의 흑백사진이 말해주는 것은 어느 겨울 다소 황량해 보이는 겨울 어느 공단 커다란 굴뚝을 배경으로 둘째를 안고 있는 큰 외숙모, 우리 엄마, 나와 동갑내기 이종사촌 형제, 큰 딸을 안은 검정 가죽점퍼 차림의 큰 외삼촌, 그리고 아직 미혼의 육군 중위 셋째 외삼촌이 각각 진지한 표정을 한껏 짓고 있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한 장의 컬러사진에는 위 등장인물 중 이종사촌형제가 빠지고 대신 둘째 외삼촌 부부가 등장하고 있는데 진지한 표정은 같다. 나는 혼자서 볼이 터져라 웃고 있다. 계절은 봄인 듯 따스한 볕이 드는 대나무밭이 배경이지만 아직 두터운 스웨터 차림이다.


다른 외삼촌들은 아직 다 살아서 이젠 막내 외삼촌마저 일흔을 바라보지만 큰 외삼촌은 언제까지나 서른 중반의 훈남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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