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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명 이영주 Nov 06. 2018

레코드 꽂이

소목장이

대학교 때 어느 날 집에 돌아오니 얌전한 인상의 아가씨가 내게 인사를 했다. 어머니는 그녀를 먼 친척 여동생이라 소개했고 처음 보는 그녀는 마치 늘 보던 것처럼 나를 오라버니라 불렀다. 어머니는 나중에 따로 내게 먼 외숙부 뻘인 그녀의 아비에 대해 말해 주셨다. 재주 좋은 소목(小木)인데 자세한 건 잊었지만 뭔가 사연이 있어 일손을 놓고 지내다 보니 머리 좋고 참한 외동딸이 여기저기 직장을 찾아다니느라 고생이 많다며 혀를 찼다.


그녀가 우리 집에 얼마간 머무는 사이 외숙부가 한 번 딸을 보러 다니러 다녀갔다. 아버지와 나는 당시에 레코드 감상이 취미 비슷한 것이었다. 하나둘씩 사모으다 보니 레코드가 제법 늘어 있었다. 내가 나갔다 돌아오니 그는 어느 틈에 뚝딱 레코드 꽂는 장을 두 개 만들어서 니스칠까지 말끔히 해놓았다. 그 위에 커다란 스피커를 올려놓으니 마치 맞춘 듯했다. 중간에 적당한 간격으로 칸막이까지 해두어서 레코드 정리에 안성맞춤이었다. 딸아이를 보살펴 주어 감사한데 가진 재주가 목공일이니 그렇게라도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그가 말했다. 젊잖고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지금은 전축도 스피커도 없고 수백 장의 레코드도 처분해버렸지만 그 레코드 꽂이는 왠지 버릴 수 없어서 삼십 년도 넘게 아직도 거실에 두고 있다. 이십 년 넘게 한 번도 틀지 못한 레코드 몇 장이 여전히 꽂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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