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명 이영주 Nov 12. 2018

소낙비

비 오던 날의 새끼 새


초등학교(국민학교) 때 어느 여름날 소나기가 퍼부었다. 친구와 나는 여느 때처럼 어느 빈 강의실에서 비 긋기를 기다렸다가 비가 그치자 축축하면서도 상쾌한 학교 안을 이리저리 쏘다녔다. 여기저리 벚나무가 많았던 교정에는 비가 오고 나면 빗방울에 흐드러지게 젖어 떨어진 나뭇잎이며 꽃잎들이 가득했다.


그날도 벚나무에서 떨어진 버찌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어서 우리는 버찌를 맛보며 즐거워했다. 그런데 그날은 버찌가 아닌 다른 것이 떨어져 있었다. 그것은 살아 있는 것이었다. 참새였을까? 아니면 동박새나 직박구리였을까? 어릴 적 새 이름을 알 턱이 없는 우리는 털도 없고 눈도 뜨지 않은 조그만 새끼 새, 그것을 떨어진 나뭇잎 사이에서 발견했다. 비에 젖어 덜덜 떨고 있는 녀석을 손으로 감싸 쥐었더니 따뜻했다. 신기했다. 우리는 작은 새끼 새 한 마리를 어떻게 하면 다시 둥지에 돌려놓을까 고민했지만 작은 우리가 오르기에는 나무가 너무 컸다.


방법을 찾지 못한 우리는 결국 나무줄기에 난 구멍 속에 조그만 살구빛 생명체를 두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어미를 만나 아무 일 없이 자랐을까? 우리는 곧 그 일을 잊었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름 비가 내린 뒤 축축해진 숲길이나 가로수길을 걸을 때면 간혹 그 일이 떠오르곤 한다. 털 없고 작은 새끼 새 같았던 우리는 벌써 어른이 되었다. 되어버리고 말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레코드 꽂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