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명 이영주 Nov 13. 2018

면도칼

미용실 원장님

미용실이 아니고 당시 이름은 미장원이었다.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유난히 개구장이였던 나는 어딜 가나 눈에 띄는 예쁜 아이였다고 하는데 내 생각엔 순전히 어머니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싶다. 잘났든 못났든 제 자식 사랑하지 않은 어머니가 어디 계시랴. 어쨌든 어느 날 어머니가 미장원을 가실 때 따라 갔던 나는 어머니가 원장님와 몇 마디 말씀을 나누는 사이 큰 사고를 치고 말았던 것이다. 미장원에는 솜털을 다듬는 면도칼이 있었던 모양인데 나는 그 면도칼이 얼마나 예리한지 비닐 소파를 재료 삼아 실험을 해보았던 것이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사단이었다.


기다란 소파가 예리한 칼날로 잘려나간 것을 발견한 어머니는 원장님께 손이 발이 되도록 사과를 했을 테고 난 모르긴 해도 볼기짝을 실컷 두들겨 맞았을 것이다. 그것도 미장원에서 머리를 손질하던 수많은 아주머니들 앞에서 말이다. 어머니께서 그 소파 값을 물어주셨을까? 간혹 고향에 가면 그 때 그 미장원이 있었다는 길을 지나갈 때가 있다. 그 때마다 미장원 사건을 떠올리고 뒷머리를 긁적이곤 한다.


지금이라도 미용실 원장님을 뵐 수 있다면 그 때 일을 사과하고 싶다. 내가 생각해도 어릴 적 나는 참 호기심이 많았다. 어느 아이인들 안 그럴까마는 내가 유난히 더 그랬다는 건 내 스스로 부정할 수 없을 정다. 그 후로도 비슷한 사고를 많이 쳤는데 미용실 원장님을 비롯하여 개구장이였던 나를 너그럽게 용서하시고 웃어 주셨던 분들께 감사드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낙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