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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명 이영주 Nov 13. 2018

우유병

동후 삼촌과 물고기 잡이

아버지는 선생님이셨다. 지금에 비하면 훨씬 정겹게 살던 시절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대부분 어렵게 살았지만 다들 비슷하게 가난했기 때문인지 스스로 가난하다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 시절 아버지 학교의 학생 중 동후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나는 그를 동삼촌이라 불렀다. 동후 삼촌은 아버지가 책임자로 계셨던 실험 그러니까 요즘 말로 치자면 근로장학생으로 공부하던 학생이었다. 즉 실험실습지를 관리하는 대신 약간의 장학금과 아울러 숙소를 제공받고 있었던 거다. 동후 삼촌은 꽤나 넉살 좋고 목소리가 큰 사내였는데 우리 집에 와서 자주 밥을 얻어먹곤 했다.


어느 날 오후 나는 웬일인지 집 뒤 개울에서 고기를 잡고 싶어져서 목장에서 늘 우유를 담아주던 유리병손에 들고 검정 고무신을 신고 집을 나섰다. 집 뒤 철조망에 난 개구멍 사이로 빠져나가려는 순간 동후 삼촌이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멈칫하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어딜 그리 가냐? 그 손에 든 건 또 뭐고?"


"아, 이거요? 고기 잡으려고..."


"뭐? 고기? 앗핫하하하..."


"..."


"네가 고기를 잡으러 간다고? 쬐그만 게. 고기가 널 잡겠다. 앗하하하"


그 날 내가 고기를 잡았었는지 어땠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아직도 젖살이 붙어 통통한 볼태기가 발게진 채 입술을 쭉 내밀고 동후 삼촌을 째려보았던 것만은 기억난다.


이제 동후 삼촌도 육십줄에 접어든 나이일 게다. 얼굴도 뚜렷이 기억나지 않지만 걸걸한 음성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한데 오늘처럼 봄볕 따스한 오후에 문득 다시 보고 싶어 지는 걸 보면 나도 어지간나이가 들어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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