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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명 이영주 Nov 14. 2018

열무김치

젊은 열무장수 아줌마

많은 사람들은 태몽을 갖고 태어나는 것 같다. 진짜인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것 만큼은 분명하다. 나의 경우는 태몽은 아니지만 어머니께서 붙여주신 내 나름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결혼 후 10년 동안 아버지와 어머니는 달콤한 신혼 생활을 지내오셨다. 10년 동안의 신혼이라니. 지금 남아 있는 두 분의 결혼 초기 사진으로 짐작컨데 분명 두 분은 행복한 나날을 보내신 것만큼은 사실이라 믿을만하다. 그러던 어느 나른한 오후였다. 늦봄이나 여름이라 해두자. 관사 마루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던 어머니 귓가에 어떤 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 날 오후였다.


"열무 사시오~!"


관사 돌담장 너머로 바구니를 쥔 손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열무 장수가 머리에 열무 바구니를 이고 지나가는구나.' 그렇게 생각한 어머니를 놀라게 한 것은 열무 장수의 손이나 목소리가 아니었다.


"열무 사시오~!" 라고 외치는 목소리 뒤에 다른 목소리가 따라 울렸던 거다.


"열무 사시요~!"


그것은 메아리가 아니라 정체를 알 수 없는 아이 목소리였다. 호기심에 관사 문밖으로 나가 골목길을 둘러본 어머니는 탄식했다. 어머니를 탄식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니라 열무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지나가는 새댁의 등에 매달린 아이였다. 아이는 엄마가 외치는 소리를 그저 노래처럼 따라 부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열몇 살쯤 되었을 때 어머니는 내게 그때 처음으로 아이를 하나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해서 내가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다. 열무 장수 아주머니는 내게 태몽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녀의 힘찬 열무 파는 소리와 등에 업힌 아이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내 태몽이 된 셈이다. 아버지는 스물여섯에 결혼하시고 서른여섯에 나를 보셨다. 그 날 그 열무 장수 아주머니가 아니었다면 나는 한참 더 늦게 세상을 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열무 김치를 때마다 나는 감사의 한마디를 슬쩍 건내곤 한다.


"알지? 아니 뭐~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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