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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명 이영주 Nov 18. 2018

카세트 테이프

비엔나레코드 여사장님

고등학교 2학년이었을 거다. 시내 중앙통 어귀의 레코드 가게에 단골이 되었다. 처음에는 요즘 말로 컴필레이션 그러니까 듣고 싶은 곡의 목록을 적어서 맡기면 주인이 그 곡들을 녹음해주는 것으로 거래를 텄다.

손님은 대략 두 부류. 하나는 '좋은 곡들로 알아서 채워주세요' 다른 하나는 꼼꼼하게 '여기 적힌 걸 꼭 이 순서대로 녹음해 주세요' 부류. 주인의 입장에선 첫 번째 부류가 편하겠지만 잘만 하면 두 번째 부류는 단골이 될 가능성이 높다. 어쨌거나 나는 두 번째 부류에 가까운 등푸른 고등어...러니까 푸릇한 고등학생으로 들락거렸다.


꽤나 남자가 따라붙었을 듯한 아주머니가 주인인 그 가게에 눈인사로 들락거리다 보니 가끔은 아주머니가 잠깐 일 보러 나가는 사이에 대신 카운터를 맡아주기도 하고 바쁠 때는 대신 손님들의 녹음을 맡아주기도 하고 녹음하느라 가져다 놓은 레코드들을 정리해서 제자리에 다시 꽂기도 하면서 말하자면 자원봉사도 하는 학생 고객이 되었다.


거기서 듣고 싶은 레코드를 틀어보기도 하고 최근 발매된 신보들의 동향을 알게 되기도 하고 레코드 마니아 지향의 잡지들을 읽기도 했다. 가끔 재수 좋은 날은 아주머니가 내가 자꾸 집었다 놓았다 하던 카세트테이프를 공짜로 집어주기도 하고 용돈을 털어 레코드라도 사는 날이면 값을 깎아주기도 했다. 물론 나는 할인받은 돈을 모아 며칠 내로 다른 레코드를 사러 달려갔으니 아주머니로서도 밑지는 장사라고 할 건 아니었다.

그렇게 얼마나 다녔을까? 몇 년 뒤 아주머니는 장사를 접고 그 바닥을 떴다. 그 무렵 나도 통신판매로 새로 나온 클래식 레코드를 회원제로 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시골 레코드 가게에 클래식 레퍼토리는 부족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 가게가 있던 자리에 지금은 무슨 가게가 들어섰는지 모르지만 내 등푸르렀던 시절의 한 자락들 보낸 그 가게는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다. 사실 그녀가 진짜 아주머닌지 아니면 올드미스인지 정확히는 모른다. 어쨌거나 내게는 어른이었으니까. 그녀가 돌연 가게를 접은 것도 로맨틱한 사연이 있어서였는지 아니면 그저 매출이 나은 다른 업종으로 전환을 한 것인지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심지어 그 가게 이름조차 생각이 안나는 것은 약간 미안할 정도다. 미안함을 약간 덜기 위해 '비엔나레코드'라고 붙여본다. 붙여놓고 보니 진짜 그 이름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사장님, 지금도 음악을 좋아하시나요?
전 덕분에 아직까지 음악에 물리지 않고 잘 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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