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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명 이영주 Nov 20. 2018

기타

보고싶다, 기열아


나는 어릴 적부터 늘 친구로 지내온 그런 친구는 별로 많지 않다. 기열이는 그런 면에서 내게는 죽마고우에 해당하는 친구다. 기열이 집은 우리 집 건너편에 있었는데 우리 집 옥상에서 내다보면 기열이 집 창문이 잘 보이는 거리였다.

기열이 집은 농사를 짓는 집안이었다. 그의 집 앞에 배추 따위를 키우는 제법 큰 텃밭이 있었다. 우리 집은 농사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가끔 기열이 집 텃밭에 가서 놀기도 했다.


기열이 집에 가면 찐 당근이라든가 보리떡 같은 간식도 있었고 찐 옥수수떡도 먹었던 기억이 있다. 어느 날 놀러 가서 밥을 먹고 있는데 기열이가 별안간 구역질을 하더니 기다란 벌레 한 마리를 토했다. 아마도 텃밭에 인분으로 거름을 했었을 테니까 기생충에 감염되었던 모양이었다. 소스라치게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또 금새 다 잊고 아무일 없는듯 잘 지냈다.

같이 밴드 활동도 했는데 기열이는 고등학교 밴드부의 지휘를 맡기도 했고 기타랑 클라리넷을 연주할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피아노 밖에는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없었다. 가끔 기열이 집에 놀러 가서 기타를 치거나 클라리넷을 불어보기도 했다.


어느 비 오던 날 기열이 집 뒤꼍에 멋진 것이 있다며 보여준다기에 따라갔더니 큰 술병에 뱀이 또아리를 튼 채 밖을 노려보고 있어서 기겁을 했다. 물론 뱀들은 표본병에 든 파충류처럼 죽은 것이었지만 표정이 너무 생생했다. 녀석은 그렇게 나를 놀려주는 걸 좋아했다.

또 어떤 날은 화장인지 분장인지를 해준다며 내 얼굴을 한참 손질해줬는데 나중에 거울을 보니 눈썹 한가운데를 허옇게 깎아 놓았다. 나 역시 녀석에게 복수한답시고 어떻게 해준 것은 기억이 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조숙했던 걸까 아니면 집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기열이는 고등학교 때만 두 번 씩이나 가출을 했다. 물론 며칠 만에 돌아오긴 했지만 가출 같은 것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은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두 번의 가출 중 한 번은 진로 문제 때문이었는데 아버지에게 음악을 하겠다고 했더니 화가 난 아버지가 기타를 두들겨 깨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녀석은 그 후로도 줄곧 아버지와 관계가 나빴다. 물론 진짜 속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신장염에 걸려 새하얀 쌀죽과 간장만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갑상선이 아파서 고생하기도 하는 등 녀석은 그다지 건강하지 못했다. 그렇게 대학을 가고 군대를 가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삼 년이나 사 년 만에 한 번씩 동창회 모임 같은 데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방송 장비와 관련된 일을 하기도 하고 중고 사무용 전자기기를 취급하기도 하면서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던 2001년 어느 초여름 돌연 녀석의 부고를 받았다. 전주 어느 여관에서 객사했다는 것이었다. 황당했다.

유년 시절을 가깝게 지낸 친구 중 세상을 떠난 첫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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