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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명 이영주 Nov 19. 2018

장지문

Sister S


여름 오후 그녀의 방문이 열렸는지 빼꼼히 내다보았다.

열려 있다.


좁은 뒷마당을 서둘러지나 그녀에게 가서 '누나~'하고 부르려는데 그녀는 공부 중이었다. 그냥 얼굴만 내밀자 그녀는 살포시 웃으며 뭐라 얘기를 했다. 그렇게 나는 우리 집 뒷마당에 그녀는 자기 방 문가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담도 없이 그저 그녀의 집 벽이 우리 집 뒷마당의 담이 되는 그런 구조였는데 두 집 사이에 유일한 통로는 그녀 방의 뒷문이었다. 창호지를 바른 창살이 촘촘한 장지문이었는데 거의 항상 안으로 잠겨 있었지만 간혹 열려 있는 날도 있었고, 그 날을 나는 기다렸다.

사실 그녀의 집을 제대로 가려면 큰길을 따라 한 블록을 돌아간 다음 골목길 맨 안 쪽까지 한참을 가야 했다. 마당엔 갖은 나무들이 많았고 우물도 있었다. 그 집은 한옥으로 가운데 본채가 있고 대문 오른쪽으로 사랑채를 겸한 방들이 들어선 구조였다. 그중 한 방이 그녀의 방이었다.

우리 집은 옥상에 올라가서 보면 그녀 집 기와지붕이 우거진 숲을 에워싼 듯한 느낌이었다. 실제로는 정원 정도였겠지만. 그래서일까? 그녀의 오라비 중 한 명은 수목 학자가 되었고 아버지도 원예 교수였으니 그 집안은 아버지의 피를 잘 물려받은 셈이다.


기억속 그녀의 모습은 전형적인 여고생이었다. 여름은 여름대로 흰 모자를 머리핀으로 약간 기울여 고정하고, 잘 다려 입은 하얀 셔츠와 검은 교복 하의, 겨울은 겨울대로 늘 반듯한 검정 세일러복. 다른 하나는 장지문을 열어 놓은 채 레코드를 듣던 모습이다. 기억나는 레코드는 인도 영화 '신상(神象)'의 사운드 트랙이었다. 인도 영화라니...


https://watcha.com/ko-KR/contents/mWJ3BnO


그녀가 선생님이 된 뒤 어느 날 나는 누나도 볼겸 그녀의 새 학기 교실 단장을 도우러 학교에 가봤다. 교실에 붙일 각종 장식이며 급훈이나 표어, 포스터를 만들고 이런저런 정리를 도왔다. 그리 자장면을 시켜 먹었다. 그 후 세월이 세월인지라 타도시로의 이동이 잦아지며 그녀와의 연락은 그렁저렁 희미해지고 말았다. 고향에 갈때면 그녀의 집이 여전히 옛 모습 그대로인지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지기도 하지만 일부러 찾아가지는 못하였다. 그건 어느날 대문 안에서 사납게 짖어대던 개소리의 기억 때문일. 어쩌면 그보다는 예전의 누나가 반겨주던 검정 나무 대문이나 기와집이 없어지고 전혀 다른 모습이라면 왠지 조금은 서운해질 것 같은 기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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