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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명 이영주 Jan 10. 2019

달과 6펜스

삼척에서 온 과외 선생

명문대에 합격한 선생이었다. 그러니까 선생이라기보다는 말하자면 한 살 위 형이라는 편이 어울릴 것이다. 내가 서예를 하네 시를 쓰네 하며 고등학교 내내 밑바닥을 치자 어머니는 마음이 졸였던지 삼척 어느 고등학교에서 선생으로 있던 막내 동생 그러니까 막내 외삼촌에게 부탁하여 대학에 갓 합격한 과외선생을 내게 붙였다.


그는 과외시간을 빼곤 대부분 문고판 영어책을 읽었다. 지금 기억나는 건 펭귄판 서머싯 모옴의 <달과 6 펜스>. 이렇다 할 요구나 방향 제시는 없었다. 사실 어디서부터 가르치기 시작해야 할 지 막막했을 것이다.


그의 훈장 생활은 대략 한 달 넘게 이어지다가 끝났다. 그가 먼저 손을 들었는지 내가 가랑이가 찢어졌는지 그건 분명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그 겨울이 가기 전에 그는 귀향길을 떠났다는 것. 탁월한 학습자가 월한 교사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걸 그때 그는 어렴풋이나마 깨친 것도 같다.


 나는 그로부터 십 년 후 그가 이미 걸었을지도 모르는 교정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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