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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명 이영주 Jan 09. 2019

별똥별

상우 혹은 승환

이유는 모르지만 상우 엄마 즉 내 이모는 제법 젊은 나이에 남편과 헤어졌다. 키가 훤칠했고 포카혼타스 같은 인상이었다. 이른바 OL이었고 헤어진 남편은 회사 중역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자란 곳은 겨울에도 눈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상우가 사는 고갯마을은 겨울이면 눈 천지였다. 어릴 적 외가 쪽 친척들에 관한 기억은 그래서 늘 눈과 겹쳐 있다. 언덕 위에서 썰매나 비닐 포대를 타고 미끄러져 내리면서 그야말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놀다가 배가 고파지면 둘 다 얼굴이 벌게져서 집으로 뛰어들어오곤 했지만 결코 지치는 법은 없었다.


어느 봄 방학 주일 예배에 온 가족이 다 참석했다. 설교는 길었다. 적어도 그와 나에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쥘 베른의 <우주전쟁> 같은 책을 꺼내서 재미있게 읽었다. 예배는 어느새 마지막 축도 순서였다.


한 번은 같이 오동도에 놀러 갔다. 뭘 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그때 찍은 사진 속의 그는 노란 반팔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야구모자 같은 것을 쓰고 있다. 모친을 닮아 눈이 가느다란 상우는 웃을 때를 빼곤 늘 진지표정이었는데 사진 속의 그도 같은 표정이다.


열기가 넘실대는 한 여름 밤 우리는 갑자기 하늘이 보고 싶어 졌다. 옥상으로 올라가 돗자리를 펴고 누웠다. 등허리에 낮 동안 달궈졌던 옥상의 열기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름을 댈 수 있는 별자리는 몇 개 없었지만 서로 더 많은 이름을 안다며 떠드는 사이 은하수는 넘실대고 가끔 별똥별이 휘익 떨어지기도 했다. 말대꾸가 없어 돌아보면 조용한 쪽은 어느새 곯아떨어져 있었다.


사는 곳이 떨어져 있다 보니 그와 나는 방학이나 되어야 만나는 그런 사이였다. 그런 관계는 국민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점차 느슨해졌다.


국민학교 졸업을 앞둔 겨울 그가 우리 집으로 놀러 왔다. 우리는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종이상자에 TV처럼 창을 내고 셀로판지를 붙인 뒤 안에 전구를 집어넣었다. 슬라이드 필름처럼 얇은 종이에 그림을 여러 장 그려 그 그림을 상자 안에 끼워 크게 보이게 만들고 누군지는 기억 안 나지만 그림에 맞는 이야기를 했다. 둘 중 하나는 카메라 기사가 되고 다른 하나는 변사 내지 성우가 된 것이었다. 이 영화관은 요즘으로 치면 프리미엄 상영관. 자리가 딱 한 개였고 관객은 여섯 살 어린 여동생이었다.


이듬해 봄 중학생이 되고 그는 이름을 바꿨다. 승환. 상우로 부르던 그와 새 이름의 그는 어쩐지 다른 사람 같았다.


그 뒤 나는 이상우의 노래와 이승환의 노래를 들으며 이십 대를 보냈지만 그를 다시 만나지는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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