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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명 이영주 Dec 26. 2018

동사무소

민원봉사실 이모


그녀는 동사무소 - 지금은 주민센터라고 불리는 - 민원실에 근무하던 공무원이었다. 키가 크고 제법 미모였던 그녀는 언제부턴가 어머니를 자주 찾았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그녀를 자주 불렀다. 확인된 사실은 없지만 아마도 다리가 불편한 남동생의 생활보호대상자 처리에 그녀가 많은 도움을 준 것 아니었을까 하고 짐작해볼 따름이다. 혹은 어머니의 하나뿐인 여동생 명옥을 소싯적 잃은 아픔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어머니의 유복했던 소녀 시대와 외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리고 그 이후 계모의 등장과 사실상 소녀 가장으로서의 고단했던 삶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간혹 눈물을 보이기도 하였다. 생모를 여읜 후 재취를 얻은 아버지의 무관심 속에 투병하다가 열네 살 어린 나이에 신장염으로 유명을 달리한 명옥의 이야기에도 꽤나 격한 반응을 보이며 어머니와 함께 울던 그녀였다. 그런 마음이 통해서였을까. 어머니는 그녀를 동생처럼 의지했다.


그녀의 존재가 어머니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다. 내 기억 속에서 그녀는 여름 어느 오후 우리 집 마루에서 어머니와 함께 열무국수를 말아먹었고 어느 겨울에는 김장 담그는 걸 도운 적도 있었다. 가끔 내게도 이런저런 말을 했는데 대략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어머니는 내게 그녀를 이모라 부르라고도 했지만 실제로 이모라 부를 기회는 별로 없었다.


어머니가 남긴 사진에서 우리 집 정원을 배경으로 어머니는 앉고 그녀는 곁에 서 있다.  몇 년 후 그녀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는지 왕래가 뜸해졌지만 여전히 사진 속 그 둘은 자매처럼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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