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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명 이영주 Dec 27. 2018

자유이용권

우보(又甫)

들을 수 없다는 건 어떤 것일까 궁금하다. 답답할까? 아니면 조용해서 오히려 평온할까? 듣지 못함은 말하지 못함으로 이어진다. 말하고 싶은 것을 말로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유년 시절  옆집에 살던 그는 듣지 못했다. 날 때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서너 살 무렵 열병을 앓은 뒤 청력을 잃었다. 사람은 듣고 따라 하면서 말을 배우는 것이므로 자연히 그는 듣지 못하게 되면서 더 이상 새로운 말을 배울 수 없었다.


그때까지 배운 말로 자기 의사표현을 했다. 단어 수는 적었고 발음은 불분명했다. 다섯 살쯤까지 배운 표현 안에 그의 말은 갇혀 있었다. 싫은 것, 나쁜 것, 불편한 것, 두려운 것. 이 모든 것은 코를 막고 똥냄새라고 웅얼거리는 것이 다였다. 그러나, 그의 필담은 고전에서 길어 올린 수많은 담론들이 펼쳐졌다. 연습 삼아 쓴 화선지 여백에 그는 간혹 필담을 늘어놓았고 나 역시 필담에 빠져들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귀와 혀가 구속된 대신 깊은 정신세계로 들어가는 자유이용권을 얻은 것 아니었을까?


그의 집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 대신 연못이 있고 연못 건너에 들어앉은 본채는 툇마루가 둘렀는데 유리문을 달아서 추위를 막았다. 할머니와 함께 살았고 그의 부친은 내 아버지와 같은 학교 생물학 선생이었다. 그는 나보다 나이는 한참 많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학교를 쉬다 보니 중학교쯤 가야 할 나이에 아직 국민학교 고학년이었다. 이학년 때쯤 나와 그는 짝을 이뤄 전국 규모의 미술대회에 함께 출전했다. 나는 종이공작 부문에 그는 수채화 부문이었다. 종이, 가위, 풀만 가지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게 종이공작이었다. 나는 디즈니 영화에 나오는 커다란 성을 만들었다. 내 키보다 큰 성채였다. 그는 꽃 그림을 그렸던 것 같다. 그는 수채화로 나는 종이공작으로 각각 상을 받았다. 그것은 그와 내가 미술을 통해 가진 첫 만남이었다.


재 선생(https://brunch.co.kr/@indigoblue/47)을 통해 취미로 서예를 하게 된 뒤 중학 시절 여러 서예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어느 대회에서 글 주제를 받아 연습 중인 내게 그가 다가왔다. 몇 년만의 만남이었다. 그는 서양화를 그만두고 서예를 한 지 꽤 된 모양이었다. 연습 중인 내 작품에 이런저런 조언(이라지만 말로 한 건 아니고 붓으로 가필했다)을 해주었다. 그의 조언 덕분이었을까. 나는 상을 받았고 그는 고등부 장원을 먹었다.


그 뒤로 서예 대회를 나갈 때마다 그를 만났고 그와 필담을 나누었다. 그는 서예가로 성장했고 나는 서예와 음악을 그만두었다. 그는 우보(又甫)라는 호를 받았다. 그의 부친은 그가 충분히 성장할 때까지 국전(대한민국 예술전)에 내보내지 않을 생각이라고 내게 얘기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그를 만나지는 못하였다. 간혹 그의 글씨를 만날 수는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내와 자녀가 있을까? 혹은 고독한 예술가로 장인혼을 불태우고 있을까?


대학 입시를 전후로 나는 더 이상 예술로서의 붓글씨를 쓰지 못하였다. 그와 조우할 기회도 당연히 거의 없었다. 언젠가 길을 가다 그가 내 어깨를 툭 치며 환하게 웃었지만 그저 길 가다 마주쳐 서로 반가운 인사를 나눈 것뿐이었다. 환하게 웃을 때 그는 얼굴까지 빨개질 만큼 함빡 웃었다. 이제 그도 쉰 중반이 되었을 것이고 필치에는 연륜과 함께 그만의 기풍이 녹아들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한두 번 그의 글씨를 볼 기회가 있었다. 한 번은 예서로 빼곡히 채운 큰 작품이었고 다른 하나는 금박 무늬를 깐 배 전지에 전서로 쓴 짧은 편액이었다.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다가왔는지 기억이 흐릿하다. 커다란 작품의 곡한 글자에는 그가 지나온 시간이 하나하나 낙엽처럼 쌓여 있었고 큰 글씨의 짧은 편액에는 왠지 지나온 삶의 결론 같은 것이 배어 나오는 느낌이었다. 긴 글이 그동안 그가 지나온 여러 풍경을 조곤조곤 묘사하며 내게 수다를 떨었다면 짧은 글은 별 말은 없이 맑게 웃어주는 미소 같았다. 나도 모르게 아! 하는 작은 탄성이 터졌다.


쌀가루 같은 눈 내리는 아침, 나는 고향에 가는 기차 안에서 밖으로 하얗게 눈옷을 입은 들판이며 산이며 마을 집들이 지나쳐가는 모습을 보고 있다. 점점 찾을 일이 없어져가는 곳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곳에 남겨둔 여러 기억까지 덮을 수는 없을 것이다. 게 중에는 그의 환한 미소도 더불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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