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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명 이영주 Jan 08. 2019

폭스트롯(Fokstrot)

엉클 트리스테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그는 학교를 셋 씩이나 세운 지방 유지의 넷째 아들이었다. 태어난 집은 아흔아홉 간 대갓집으로 지방 유형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반듯한 곳이었다. 소년 시대의 그는 축구 유망주였다고 그의 맏누이는 증언했다.

중 1 때 그는 통학 열차에 무임승차하였다가 검표원을 피하려고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렸고 한쪽 발 절반을 잃었다. 그와 동시에 축구도 함께 잃었다.


그의 어머니가 유방암으로 절명하자 그의 아버지는 아이가 여럿 딸린 여인을 재취로 들였다. 큰누이는 동생들을 건사하느라 여고를 중퇴하였다. 얼마 오래지 않아 둘째 누이는 신장염을 앓다가 죽었다. 큰누이는 중학교 교사와 혼인했지만 십 년 동안 아이가 없었다. 둘째이자 맏형은 어린 딸 둘을 형수의 품에 남긴 채 고속도로 순찰 중에 순직했다. 작은 형은 남도의 해안에 정착했지만 일이 순탄치는 못하였고 종내는 치매가 생겼다. 손위 형은 육군 사관학교를 나와 소위로 임관하여 월남전에 참전했다. 살아 돌아온 그는 출신 때문인지 끝내 대령 진급을 하지 못하고 예편하여 부산에 정착했다. 막내 동생은 체육학과를 졸업 후 돌연 광업 선생이 되어 강원도로 떠나 거기서 정년 하였다.


그는 집을 나와 떠돌았다. 때때로 큰누이는 어렵사리 그를 찾아내 집으로 데려왔지만 오래 머물지 못하고 방랑하기를 그는 거듭했다.


그는 동가식 서가숙 하다가 아프고 지치면 결국 피붙이를 찾아갔다. 피붙이라고는 해도 이미 가정을 가진 터라 오래 의지하기는 어려웠다. 어느 날 불쑥 찾아온 그에게 누이는 욕도 하다가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다가 밥상을 차려주고 곁에 앉아 반찬을 숟가락에 얹어주곤 하였다. 매형은 사람 노릇 못하는 처남에게 적잖이 박정하였지만 누이는 달리 말대꾸를 못하였다. 오랜 객지 생활로 그는 피똥을 싸기도 하였고 잃어버린 발가락 자리가 헐어 진물이 흐르기도 하였다. 매형에게 매정한 소리를 들어도, 누이에게 험한 소리를 들어도, 그는 대체로 무표정했고 밥상을 받으면 무엇을 주든 얼마를 주든 개의치 않고 삼켰다.


어느 날 누이가 조카와 함께 악기점에 가서 기타 한 대를 사서 그에게 쥐어주자 그는 폭스트롯 리듬을 자연스럽게 뽑아내었다. 조카는 눈을 의심했다. 그는 그 외에도 적잖은 곡들을 연달아 연주하더니 오랫동안 쳐보지 않아서 치기가 어렵다고 작은 소리로 혼잣말하듯 말했다. 그 뒤로 간혹 기타 소리를 들을 수는 있었지만 자주는 아니었다.


누이는 그가 가정을 가지면 안주할까 싶어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혼처를 찾았다. 생활력은 있어 뵈는 단지증을 가진 여인이었다. 숙모는 곧 아이를 낳았다. 어미를 닮아 팔다리가 짧았다. 얼굴은 아비를 닮아 말쑥하였다. 아비는 아들을 품에 안을 때 얼핏 미소를 띠긴 하였으나 어떤 경우든 말은 별로 없었다. 매형은 장애를 가진 처남이 결혼까지 해놓고 뒷방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못마땅해하였고 간혹 그 일로 아내와 말타툼 하였다. 얼마 뒤 그는 처가로 옮겼고 간혹 들리는 이야기로는 집을 나갔다가 돌아오기를 되풀이하였다고 한다.


철없던 소년 시절 발 반쪽을 잃고 축구를 포기한 뒤 반쯤 절망한 채 일엽편주처럼 방황한 동생을 큰누이는 남편 모르게 이런저런 방도로 도왔다. 큰누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끈 떨어진 연처럼 그와 연락은 끊어졌다. 얼마 전 그의 매형도 여든넷을 살다가 암으로 숨졌다. 장례식에 살아 있는 형제들이 모였지만 그의 모습은 없었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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