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 접어들어 계곡 물은 제법 차가웠다. 그저 작은 계곡이라고는 해도 중간 중간 깊은 소(沼)가 있어서 몇 년에 한 번 씩은 어린 아이의 익사 소식을 듣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도 그 계곡 하류로 내려오면 물이 따뜻했다. 아이들은 그 곳을 좋아했다. 물이 따뜻해서 놀기 좋았기 때문이리라. 가을에 물놀이를 했던 기억은 없지만 초등(국민)학교 시절 여름에는 친구들과 그 곳에서 다이빙 놀이를 한 적이 있다.
물이 따뜻한 이유가 있었다. 지금은 아마 없어졌을 소주 공장에서 버리는 슬러지가 더운 물과 함께 섞여 내려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근처에서는 늘 술찌끼 냄새가 은근했고, 어려운 시절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슬러지를 건저 올려 냇가 언덕에 널어 말린 뒤 그것을 땔감으로 쓰는 이가 적지 않았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그런 것 쯤은 개의치 않고 잘 놀았다. 어쩐 일인지 계곡 물도 양이 줄었고 계곡과 강이 합쳐져 하구도 강바닥이 높아져 물이 줄어들었다.
80년대 말 90년대 초 지역 환경단체가 몇몇 지방대학 교수들과 함께 이 문제를 들고 일어났다. 계곡 물과 강물이 만나 바다로 흘러가는 두물머리부터 강 하구까지 물이 다 썩었다는 것이었다. 내 또래 아이들이 자라서 벌거숭이로 놀지 않게 된 것도 이유긴 했지만 수질이 나빠져서 영 물놀이를 할 기분이 들지 않았던 것도 중요한 이유였을 것이다. 나는 어쩌다 고향을 떠났고 그 후 10년 동안 이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느 해 명절 고향을 찾은 내가 본 강은 물빛이 퍼래졌고 물높이가 제법 올라 있었다.
지금 강물은 맑아졌고 아마도 많은 이들은 소주 공장에서 흘러나왔던 슬러지로 땔감을 해결했다고 하면 의아해 할 것이다. 하지만 내 친구의 집에서도 그 슬러지 말린 것과 쇠똥 말린 것을 함께 아궁이에 넣어 무쇠솥에 밥을 지어 먹은 것을 나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물론 그 밥은 더없이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