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대 정바울 교수님과 김재원 선생님의 논문을 중심으로 팩트체크
>> 워라밸 세대는 권리만 찾고 의무는 다하지 않는다?
>> '일삶균형'과 '업무에 대한 헌신'은 이항대립적인 관계가 아니다
>> '헌신'의 개념, '충성심'의 방향은 세대마다, 사람마다 다르다
>> 나의 성장은 아이들의 배움과 이어져, '교사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
학교 조직은 그 어느 조직보다도 다양한 세대 그룹이 공존하는 곳입니다. 초등교사의 일터에서는 다중 세대가 함께 일하는 방식의 좋은 예를 적잖이 발견할 수 있지만, 세대 간의 불협화음 또한 흔하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초등교사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밀레니얼 교사에 대한 다른 세대의 오해가 불협화음에 한몫을 하는 듯하게 보입니다. 책 <90년생이 온다>에 나오는 '90년대생을 향한 흔한 오해'를 한 토막 소개합니다.
현재 20대인 90년대생들에 흔히 붙어 다니는 꼬리표는 다음과 같다. '충성심이 없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것만 챙기고', '자기 권리만 찾고 의무는 다하지 않고', '자기 실수는 인정 안 하고 변명만 늘어놓고', '끈기가 없어서 쉽게 포기하고', '공과 사의 구분이 없고', '고집이 세고', '힘든 일은 견디지 못하고 쉽게 포기한다'. 하지만 이러한 꼬리표는 보통 기존 세대들의 시각에 따른 것이다. ㅡ 임홍택, <90년생이 온다>, p. 153
90년생을 포함한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 Generation)'는 '나 세대(Me Generation)'라고 불릴 정도로 자기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고, 또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중요시하는 세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밀레니얼 세대는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들, 개인의 삶이 중요해 일을 등한히 하는, 직업에 대한 충성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일까요? 자기다움과 워라밸을 지키고 싶어 하는 세대는 필연적으로 직업 헌신도가 낮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으실 수 있습니다.
초등교사커뮤니티 인디스쿨과 건강한 변화를 위한 실험실 진저티프로젝트가 지난해 함께 발간한 <밀레니얼 교사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젊은 세대 교사들이 워라밸을 중시하는 것은 맞지만, 동시에 그들은 배움에 열정적이고 교육현장의 새로운 시도에 목이 말라 있는 등 의무를 등한히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모습인데요. (이 연구의 일부를 브런치 매거진에서 읽어보실 수 있고, 구글 양식을 통해 pdf 파일을 요청하실 수도 있습니다.) 일도 워라밸도 모두 열심히 챙기는 이러한 모습은 일반적인 인식의 틀에 잘 들어맞지 않아 어쩐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현재 교사 집단에서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으며, 실제로 초등교사커뮤니티 인디스쿨과 진저티프로젝트가 합작하여 밀레니얼 세대 교사에 대해서 연구하기도 하였다. (중략) 연구 결과 그들의 특징은 워라밸 추구, N개의 정체성, 학급의 기획자, 덕업 일치 등의 특징을 보이며, 그들은 배움에는 정해진 방식이 없고, 교사의 삶이 배움과 연결되며, 달라진 교사의 역할과 배움의 공간에 대해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본 연구와 앞서 언급된 연구에서는 여러 공통점을 보이고 있으며, 이것은 교육 현장과 교육 연구에 중요한 시사점을 줄 수 있다.
ㅡ 김재원. 2018. "밀레니얼 세대 교사들의 직업 동기, 업무 인식 및 교직 경력 전망 탐구". 석사학위, 서울교육대학교 교육전문대학원
인디스쿨이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서도 충분히 밀레니얼 초등교사의 '업무에 대한 헌신'과 '일삶균형'이 어떻게 버무려지는지 확인하실 수 있지만, 보다 학술적이고 이 부분을 조금 더 뾰족하게 다룬 논문을 알게 되어 오늘은 이 논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사실, 지금 작성 중인 이 콘텐츠는 『한국교육학회 학술대회논문집』에 실린 밀레니얼 세대 초등교사 연구에서 발견한 띵언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작성하는 중임을 알려드려요.
워라밸을 통한 일과 삶의 균형을 모색하는 것과 업무에 대한 헌신이 제로-섬과 같이 이항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일과 삶의 균형과 업무에 대한 헌신이 공존한다는 것이었다. ㅡ 정바울, 김재원
위의 학술지 논문에서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이한 점으로 '일과 삶의 균형'과 '업무에 대한 헌신'이 공존한다는 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서울교대 정바울 교수님과 김재원 선생님의 연구 인터뷰이 중 한 초등교사의 말과 같이 그들은 자신이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직업을 향해 '헌신'하고 있다고 표현하지 않는 경향이 있고, 개인의 삶을 무척 중요시 여기는 특징이 있지만,
"나랑 헌신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아. 그냥 내 삶과 나의 직업과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하는 거지. 뭔가 헌신하는 거는 나의 일부분을 소모한다는 어감이 있는데 나는 그렇게 뭐 하나에 헌신하지 않아. 나한테 가장 중요한 거는 나인거지. 보통 헌신이라는 단어는 희생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랑 맞지도 않고 워라밸을 맞추는거지. 일과 개인적 삶 중에서 일이 중요시되지 않아. 다만 개인적 삶과 일이 구분 지을 수는 없는 거지. 내가 내 삶을 중요시한다고 해서 아이들을 소홀히 한다는 게 아니라 나를 지키면서 아이들 관계를 바라는 게 과부하가 걸릴 때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적정선을 지키려고 해.”
일과 삶을 따로 떼어 생각지 않고 삶 속에 일이 있다는 총체적인 관점으로 삶을 대하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중요시 여기고, 그래서 아이들에게 더 잘할 수 있기도 합니다. 그들은 학교 업무로 인해 개인적인 생활을 침해받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헌신하지 않는 교사'처럼 인식되기도 하지만,
Stone-Johnson(2016)에 따르면 헌신은 개념이 분명하지 않고 세대별로 다르게 인식되기 때문에 헌신적인 사람들이나 헌신이 높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갈등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Day(2007:Stone-Johnson 2016 : 73에서 재인용)는 헌신을 3가지로 나누었는데, 학생들과 학교에 대한 개인적 차원의 헌신, 동료들 간의 조직적 차원의 헌신, 직업에 대한 전문적 차원의 헌신으로 구분지었다. 밀 7의 경우는 개인적 차원의 헌신이 높은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높은 조직적 차원의 헌신을 가지고 있거나 중요시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헌신적이지 않은 사람이라고 여겨질 수 있으며 이는 헌신의 개념이 사람마다 다른 것에서 오는 오해이기도 하다. ㅡ 정바울, 김재원. (2018). 밀레니얼 세대 초등교사 연구. 한국교육학회 학술대회, 2018, 259-284.
논문에서 말하는 것처럼 '헌신'은 개념이 분명하지 않고 세대별로 다르게 인식되므로 '헌신한다', '헌신하지 않는다'로 사람을 구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또, Day의 분류대로 3가지의 헌신이 있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이 세대는 '조직적 차원의 헌신'이 다소 부족한 집단일 수 있으나 '학생들과 학교에 대한 개인적 차원의 헌신' 또는 '직업에 대한 전문적 차원의 헌신'은 높은 세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논문을 쭉 읽다 보면 그들이 개인적이고 전문적인 차원의 헌신을 부지런히 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설득됩니다. 논문까지 가지 않아도, 우리 주변에 있는 동료 교사들을 살펴봐도 알 수 있고요. (물론 모두가 그렇게 훌륭하지는 않을 것입니다만, 그건 세대의 문제는 아니니까 예외로 두고 생각하기로 합니다)
앞서 살펴본 90년대생에 대한 흔한 오해 중에 '충성심'이 없다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충성심이 학교,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일컫는다면 이는 오해가 아니라 아마도 사실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세대를 교직, 수업, 성장을 위한 활동, 배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충성심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오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늘날의 충성심은 첫째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미래에 관한 것이고, 둘째가 자기 팀과 프로젝트에 관한 것이며, 마지막이 회사에 관한 것이다. ㅡ 찰스 핸디
90년대생들은 회사에 대한 충성이 곧 나의 성장이라는 공식을 배격한다. 새로운 세대는 '회사에 헌신하면 헌신짝이 된다'는 인터넷상의 '직장 계명'에 동의하고, 이를 넘어서 충성의 대상이 '회사'여야 할 이유가 있냐고 반문한다. 찰스 핸디는 <코끼리와 벼룩>에서 오늘날의 충성심이란 것은 "첫째가 자기 자신과 미래에 대한 것, 둘째가 자기 팀과 프로젝트에 대한 것, 마지막이 회사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ㅡ 임홍택, <90년생이 온다>, p. 155
이 말을 조금 변형해 보겠습니다. 오늘날 교사의 충성심은 첫째가 공적 영역의 삶을 포함한 교사 개인의 삶에 관한 것입니다. 둘째는 그 교사가 소속된 교사모임, 동학년 등의 팀과 수업, 창작 활동 등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이 학교에 관한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들은 관리자가 되는 전통적 진로가 아닌 대안적 경로 궤도를 모색하기도 합니다.
밀레니얼 세대 교사들은 전통적인 교직 경력 진로였던 관리자 외에도 다양한 진로에 대해서 생각하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하면서 그 분야의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일을 생각하기도 하였으며, 승진을 희망했었으나 수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승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도 하였다. 또 여러 가지 진로 중에서 정말 본인이 행복한 길이 무엇이며, 그 길이 자신의 개인적 삶도 만족시켜줄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기도 하였다. (중략) 자신이 SNS 속 다른 선생님들에게 정보를 얻어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자신이 가진 지식을 SNS에 공유하고, 그곳에서 다양한 지식을 얻고, 여러 전문적 학습 공동체를 경험하면서 학교 밖의 더 큰 세상을 경험하였다고 말했다. ㅡ 정바울, 김재원. (2018). 밀레니얼 세대 초등교사 연구. 한국교육학회 학술대회, 2018, 259-284.
자기 자신과 자신의 미래를 향한 충성심이 가장 크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하면서 그 분야의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진로를 꿈꿉니다. 정말 본인이 행복한 길이 무엇인지, 사적 영역의 삶까지도 만족시킬 수 있는 양립 가능한 진로는 무엇인지 고민합니다. 인디스쿨 공식 교사모임장이었던 한 선생님은, 자신이 관심을 갖고 대단히 열정적으로 배우고 있는 분야와 교육을 연결하는 비영리 단체를 제대로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자기 자신, 자기 팀, 자기 프로젝트에 대한 충성심이 두드러집니다. 이렇듯 밀레니얼 세대는 과거와 충성심의 방향이 다를 뿐, '충성심이 없는 사람들'이라 분류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면담을 진행한 밀레니얼 세대 교사들은 학교 업무 외에도 자신의 관심있는 분야를 배우거나 경험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지만 결국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했고, 교사의 질이 교육의 질이라고 표현하였다. 또 본인이 행복해야 긍정적이고 좋은 기운이 아이들에게 미치기 때문에 본인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밀 1은 학교 체육부장 일 외에도 거꾸로 교실, 교내 학습 공동체 리더, 교외 학습 공동체 참여, 애플 교육자 프로그램(ADE) 등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밀 1은 이렇게 많은 것에 참여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일차적으로는 본인이지만 근데 결국에는 그렇게 생각해요. 교사가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은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애들한테 투영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러니까 왜 교육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교사가 많은 경험을 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ㅡ 정바울, 김재원. (2018). 밀레니얼 세대 초등교사 연구. 한국교육학회 학술대회, 2018, 259-284.
이 세대 교사들이 워라밸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나의 성장이 아이들의 배움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학교 업무나 조직의 단합에 투입되는 시간을 가능한 줄이고, 시공간의 자유를 얻어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또 행복할 수 있는 환경에 놓이기를 원합니다. 자신의 경험과 성장이 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자양분이 되고, 자신의 행복이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기운으로 가 닿을 거라는 믿음에서 기인한 욕구이기에 이를 단순히 권리를 주장하고 편안함만 추구하는 모습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내가 여러 가지를 배우고 새로 역량을 쌓는 게 수업에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 내가 즐겁고 하는 일에 만족스러워야 학생들에게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 내가 사는 삶이 애들 교육하고 전혀 연관 없는 삶이 아니니까.
여기까지 쓰고 보니 지나치게 좋은 말만 가득해 너무 밀레니얼 초등교사의 '편'에 서서 치우친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만, 편향적이라 비판을 받는다 해도 계속해서 그렇게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보수적인 문화와 과도한 행정업무를 힘들어하면서도 자기다움을 잃지 않으려고, 오늘도 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주고자 고군분투하는 주변의 밀레니얼 선생님들을 격려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더 연구하고 고민한다고 야근 수당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한 단계 높은 무엇에 도달하기 위해 오늘도 애쓰는 또래 선생님들께 기회가 닿는대로 사랑과 존경을 보내고 싶습니다.
같은 마음으로 밀레니얼 세대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그들의 특성에 따른 조직과 시스템의 변화를 촉구하는 연구를 수행해주신, 인디스쿨X진저티프로젝트 밀레니얼 교사 연구팀에게 큰 영감과 기쁨 안겨주신 서울교대 정바울 교수님과 김재원 선생님께 Special Thanks를 전하며 글 마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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