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쿠야 온천 여관에서 나는 들었다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吾輩は猫である。名前はまだ無い。)."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첫 문장. 술에 빠져서는 하릴 없이 히죽대고 무리에 뒤섞일 생각에나 골몰하던 나는 이 글이 좋았다. 저토록 당당한 자기소개라니. 결핍에 대한 아무렇지 않음과 그 속에 스며 있는 자유묘의 자존과 냉소가 귀했다.
작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9세기 중반에 태어나 20세기의 문지방을 베고 죽은 식자. 일본 근대 문학의 깊은 병, 사소설에서 힘차게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잡아끈 '바야흐로 탐미'나 미시마 유키오의 배를 가른 '나라는 감옥'에 빠져드는 대신 세상과 관습에 대척하며 스스로를 얕본 날카롭고 시니컬한 현대인이었다.
해걸음 붉은 하늘처럼 겨울에 죽은 사람
그러니까 시즈오카 행 비행기를 탄 건 문학 때문이었다, 는 핑계를 댈 수 있다면 좋지 아니한가. 특히나 나쓰메 소세키라면. 짧았던 생의 막바지, 시즈오카 곁 이즈의 온천 여관 <기쿠야>에 머물며 삶을 견디던 그의 옅고 가쁜 날숨을 느끼고 싶었단 건 에디터로선 적당한 이유다. 12월 중순의 퇴근길, 2호선이 스산한 진폭으로 삐걱대며 한강 철교를 넘을 때 얄궂게도 일몰은 저미게 아름답다. 하지만 '센치'에 흠뻑 젖을 여유는 없다. 예약에 실패한다면 싱글 크리스마스에 연말연시다. 그러하다. '나는 이제 마흔이다. 애인은 아직도 없다.'들숨을 멈춘 채 예약을 마치고 무심히 소세키의 연보를 훑어본다.
'1916년 12월 9일 오전 위궤양으로 사망한다.'
역시 겨울이었구나. 저 일몰처럼 겨울에 죽는 건 어떤
기분일까. 우울이 몰려온다. 붉고 선명한 우울도 여행의 좋은 친구다.
'여기 마흔 살 싱글 남자 있음.'
인천국제공항에서 시즈오카까지는 쉽다. 비행기로 2시간. 랜딩 즈음 후지산을 돌아내리는 보너스에 눈호강도 더해진다. 내려서가 바쁘다. 시내로 가서 3차례 지선 철도를 갈아타느라 1시간 반 남짓이 훌쩍 지난다. 그리고 이즈반도의 온천 여관촌, <슈젠지 역>에 닿는다.
거기서 택시로 15분이면 1912년, 그러니까 소세키가 죽기 4년 전 머문 온천 여관, <기쿠야>에 도착한다. 체크인은 카운터 대신 소파에서 진행된다. 입구에서 안내받은 자리에 앉아 풍광을 즐기다보면 직원이 찾아온다. 방 안내와 열쇠 인수인계, 그리고 료칸 지도를 하나하나 짚어주는 친절한 설명을 모두 듣고 나서야 나는 내 방으로 걸어들어갈 자격을 얻는다. 번들거리는 나무 마루를 밟으며 계단을 오른다. 료칸 곳곳, 창밖으로 보이는 정원은 다분히 무심한 듯 온 정성을 쏟은 일본의 것이다. 옷을 갈아입고 이제부터는 소세키처럼 하루 묵어볼 요량이다. 대욕탕은 가족객들이 기세 좋게 차지했다. 요금에 사용료가 포함된 대실 욕탕에 들어서며 푯말을 '사람 있음'으로 바꾼다.
겨울 온천 탕안에서 엿들은 그 속삭임
몸을 담그기 전에 코 끝으로 열기가 훅 하고 치고 들어온다. 웬만큼 뜨거운 게 아니다. 천천히 발끝부터 담근다.
"휴우, 흡흡흡, 후욱." 열기에 긴장한 몸을 풀어주며 길게 숨을 내쉰다. 두 팔을 벌린 정도 지름의 아담한 나무 욕조에 오직 나, 나 뿐이다. 대나무 칸막이 몇 개와 나무, 하늘이 벽과 지붕이다. 대식가인데다 단맛을 탐닉하다 위장병을 얻었다는 소세키도 이 탕 안에서 쓰라린 배를 쓰다듬으며 한 고비를 넘겼겠지. 공기는 차고 뜨거운 온천수는 피부를 지나 장기를 데운다. 그 간극의 평안이 온몸의 긴장을 녹인다. 머리는 맑아지고 몸도 기어이 남은 고집을 꺾고 늘어진다.
욕조에 목을 기대고 눕는다. 온전히 한 작가의 생을 되짚으며 온몸의 감각에 집중하는 지금은 혼자이기에, 눈치를 보며 길을 헤매면서도 기어이 혼자 먼 길을 왔기에 즐길 수 있는 기쁨이다.
"여기까지여도 좋아. 오늘까지 살아도 별 후회 없어."
갑자기 생각이 말이 되어 나왔다가 곧 입김으로 사라진다. 놀라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괜히 두어 번 헛기침을 뱉는다. '내가 한 말인가?' 아니라면. 기쿠야에 깃든 소세키의 마음이 잠시 내게도 전해진 걸까.하긴 아무렴 어떤가. 뜨겁고 시원하며, 외롭고 그래서 더욱 깊어지는 이 겨울 온천 여관에서.
2018. 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