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흔들리고 흔들려 당신의 품 속
여기는 도쿄 오시아게 역, 스카이트리 뒷골목
저녁 7시. 이미 말못하게 취했다. 그것도 이국의 한적한 뒷골목에서. 취기의 반은 미치코 상 때문이었다. 한참을 주뼛거리다 문을 열고 들어선 선술집. 마침 생일을 맞은 그녀가 마스터와 조촐한 파티를 열고 있었다. 유일한 하객인 나는 단박에 이방인에서 친구가 되었고 곧이어 들어선 단골들이 권작의 축제에 동참하며 금세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한바탕 메뉴의 모든 술을 주문했고 이국의 밤을 적실 새로운 술이 마르자 미련 없이 자리는 이전되었다. 다음 차 추천을 부탁하자 미치코 상은 망설임 없이 "위스키 바 <幸音>!"이라고 외친다.
"위스키는 집어치우고 맥주로 줘요. 이미 말 못하게 취했으니까."
문을 열자마자 바텐더에게 윽박지른다. 우스운 이야기다. 나는 일본어를 잘 모른다. 그런데도 호기롭게 바, <幸音>의 문을 열고 들어서며 분명 이렇게 말했다, 고 혼자 믿으며 가운데 자리에 '털썩' 몸을 던진다. 쓰러질 듯 휘청이면서 기어이 가게를 옮겨가며 들이켜는 건, 그렇다. 또 실연이다. 실패하고 만 것이다. 그리곤 허망함에 도망치듯 공항으로 향한 게 오늘 아침이다.
"아니, 그럴 게 아니라 같이 마시죠, 오늘은 다른 손님도 그다지 없을 듯 한데."
이른 가을 태풍이 열도의 왼쪽을 벼리고 지난다는 소식이다. 스카이트리 뒤쪽의 이 곳도 적막하다. 파근한 퇴근길의 흥청임도 기대할 바가 아니었다. 마스터도 별다른 거절 거리를 찾지 못한 듯 막무가내로 권한 맥주를 꺼내들고는 앉는다. 의외로 평범하게 하이네켄이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미치코 상과 권작하던 차였는데, 마스터, 미치코 상을 아시지요?"
"그럼요. 방금 손님 가방을 가져다 준 분이 이래봬도 이 동네 유일의 위스키 바, <幸音>의 단골, 미치 상이지요."
아, 하며 나는 오른쪽 어깨를 서너 차례 쓰다듬는다. 여기 매달려 있던 일상의 무게를 나는 어느 이국의 길 위에 던져버렸나. 내 뒤를 따르며 대책없이 휘청이는 걸음을 보았다면 어느 여인이라도 이내 '사요나라'겠지. 마지막 전철의 속도가 철로를 덥히는 지금은 밤 11시 30분. 진동이 바의 진열장을 옅은 파동으로 때린다. 매끈한 병 속의 술들은 익숙한 듯 치마를 걷어올렸다 사뿐히 내려앉는다.
입구 곁에 세워진 낡은 기타는 마스터의 꿈이다. 몇 번 시부야의 무대에 섰는데 그게 다였다. 일주일이면 두 번은 가게를 비우고 공연이든 연습이든 한다는데, 그래서야 영업도 연주도 제대로 하기는 틀린 것이라며 웃는다.
"그거 알죠? 아쿠자도 아버지도 제대로는 될 수 없는 영화 속 다케시, 그런 꼴이지요. 지금의 기타맨 생활이라는 게."
나는 그런 웃음이 슬프다. 그의 입꼬리가 그리는 묘한 사선의 불안을 나는 알고 있다. 보고 싶은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일주일에 두 번 당신이 되지 않을 꿈을 따라 현 위를 휘청일 때, 나는 얼마나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나. 우리의 음표는 어느 마디 위에서 자연 소멸되었나. 지금은 오로지 보고 싶은 그 마음에 몰입할 뿐이다. 돌아가면 '이젠 어쩔 수 없는 거겠지.'라고 인정하게 될 지라도.
바에서 나는 챙겨나온 모든 엔화를 소진한다. 기억이 검고 좁은 구멍 사이로 회오리치며 사라진다. 조금은 울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남은 기억의 패잔병들을 진압할 두 캔의 맥주를 장전하고 호텔로 걷는다. 그녀의 이름이 떠오르고 나는 조금은 울고 싶은 생각이 든다.
오시아게 뒷골목에서 그녀의 이름을 몇 번 불러본다. 그것으로 되었다. 이제 나는 건너가야 한다. 이국의 길 위에서 낡은 가방처럼 버려지지 않기 위해.
'ブル-ライト 押上, 私は ゆれてゆれてあなたの腕の中.'
('블루라이트 오시아게, 나는 흔들리고 흔들려 당신의 품 속'_이시다 아유미의 <블루라이트 요코하마>에서 인용)
건너간다는 그 단출한 숭고만을 되뇌이며 나는 오로지 걷고 있는 것이었다.
2018. 10.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