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배고파

아빠의 육아휴직

by 인드라

'아빠! 배고파'


우리 집 초등학생 딸과 아들은 배가 고프면 아빠를 찾는다. 보통의 아이들은 '엄마! 배고파'가 일반적일 텐데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엄마는 3개월 전부터 기간직 공무원에 합격해서 일을 하고 있고 아빠는 3개월 전부터

육아휴직 중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 집은 어찌해서 이렇게 일반적이지 않은 구조가 되었을까?


아빠는 일반적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빠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해서 엄마를 만나 사랑했고

결혼했다. 그래서 눈뿐 아니라 내 몸 어디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아이를 얻었다. 간호사였던 엄마는 결혼

초기 일을 하다가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전업 주부가 되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자 와이프는 일을 하고 싶어 했고 열심히 공부를 하더니 기간직 공무원에 합격을 했다.


그즈음이었다 회사를 다니고 있던 아빠에게 이상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아빠는 회사 입사 후, 열심히 일했고 어느 정도 인정도 받고 있었다. 과장이라는 직급도 받았고 어느덧 팀에

아빠보다 윗사람은 몇 명 없는 위치까지 도달했다.


'그러면 회사 생활이 별로 힘들 것 없겠네' 싶겠지만 항상 반전은 있기 마련...


팀장은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매일 아침 회의마다 독설을 퍼붓고 모든 책임을 팀원에게 떠넘기며

팀원의 의견을 묻는 척 하지만 자신의 의견대로 모든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었다. 감정을 소비하는 노동자들이 상담직 노동자에게만 국한되는 개념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회사에서의 스트레스가 일상생활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할 무렵 아빠는 깨달았다. 그냥 마냥 참고 견디기만

해서 될 일이 아니란 것을...


이쯤에서 아빠가 엄마에게 '나 힘들어서 회사 못 다니겠어. 회사 그만둘래.'라고 얘기하면 엄마의 반응을 어떨까? '그럼 돈은 누가 벌어? 애들한테도 돈이 점점 많이 드는데 회사 그만 두면 뭐해서 돈 벌건데?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대한민국 대부분 남자들이 힘든 것 참고 그러면서 회사 다니고 있어' 이게 일반적인 반응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엄마는 어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스스로 용돈도 벌고 학교 졸업하고 바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살아온 자존감이 매우 높은 사람이었다.


'그만두고 싶으면 그렇게 해. 10년 넘게 회사 다니면서 고생 많이 했잖아. 좀 쉬면서 하고 싶었던 것도 좀

하고 남은 인생 하고 싶은 일도 좀 찾아봐.'


정말 멋진 여자이지 않은가?

아빠는 결혼을 참 잘한 거 같아.


하지만 아빠의 진짜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정말 회사를 그만 두면 뭐해서 먹고살지? 다른 일 시작해서 잘할 수 있을까? 현실이 코앞에서 혀를 날름거리는 뱀처럼 다가왔다. 하지만 아빠와 엄마의 결론은 '내가 행복해야 가족도 행복하다.'였다. 금전적으로 남부럽지 않은 대기업에 다니고 있지만 내가, 우리 가족이 행복하지

않으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결국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말을 회사 측에 했고 인사 담당자가 나를 찾아왔다.


그만두겠다고 말은 했지만 아무도 잡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서운할 거 같은 이 기분은 뭐지?


어쨌든 내 바람대로 담당자는 퇴사를 만류하기 시작했지만 아빠의 의지는 단단했다. 그 시점에서 인사담당자가 아빠에게 권유한 것이 바로 육아휴직이었다. 둘째가 만 7세라 육아휴직 대상자에 해당이 되었고 당장 그만두기보다는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보라는 회사의 배려였던 셈이다.


회사를 그만두는 것을 결정할 때 아빠와 엄마가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과연

이것이 최선의 선택인가 하는 부분이었다. 지금은 최선의 선택이라고 보이지만 '시간이 흘러서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가?'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고민이 많았던 부분이었다. 두 번째는 금전적인 부분이다. 엄마가 다시

일을 시작했지만 급여는 아빠가 평소에 받아오던 월급의 반 정도에 불과했다. 계산상으로는 아무리 아끼면서 살아도 한 달에 100만 원 정도의 돈이 더 필요했다.


그런데 육아휴직은 이 두 가지 걱정을 멋지게 커버할 수 있는 절충안이었다. 1년 정도 쉬면서 회사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고 육아휴직급여를 받으면서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방안이었다. 나의 큰 고민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하여 아빠의 육아휴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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