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pilogue
"이야, 대박! 3 연상이다."
"헐~, 어떻게 네가 사는 주식은 다 오르냐? 너 혹시 예지몽 이런 거 꾸는 거 아냐?"
"그런 게 어디 있냐?".
오전 11시, 상훈이는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준현과 커피숍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주식을 보고 있었다. 그저께 상훈이가 산 '대박 바이오' 주식이 3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준현은 상훈이 정확히 얼마를 투자했는지 모르는 채 그저 부럽기만 했다. 상훈이 이 종목에 투자한 금액은 1억 원. 그저께 투자한 1억 원이 지금 2억 원이 넘는 돈이 되었다. 최근 한 달 동안 상훈이 사기만 하면 그 종목은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었다. 준현은 상훈이 어디서 정보를 받아서 주식을 하는 것인지 궁금해서 여러 차례 물어봤지만 상훈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재수야! 재수. 그냥 운이 좋은 거라고. 요즘은 바이오가 대세잖아. 사서 기다리면 다 오른다고"
"그럼 나도 해볼까? 네가 종목 추천해줄래?"
"아~ 그건 아닌 거 같아. 오르면 다행이지만 내리면 누굴 원망하려고"
그냥 운으로 이런 게 가능한 일인가? 그냥 운이 좋은 거라니 그러려니 해도 준현은 상훈이 너무 부러웠다. 28살의 나이에 취직이 안돼서 이 시간에 같이 커피숍에 있는데 같이 있는 친구는 주식으로 돈을 벌고 있으니... 뭐 밥이나 커피나 술이나 모두 상훈이 계산하니 좋기도 하지만 주식 정보가 있으면 같이 공유해 주면 좋으련만...
하지만 또 한편으로 지금까지 상훈이 고생한 것만큼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한편 상훈은 신났다. 3개월 전만 해도 술을 마셔버린 원룸비 30만 원이 없어 애태웠다. 어머니께 돈 달라고 하기에는 너무 죄송했고 주변 친구들 중에서 그만한 돈을 빌려줄 만한 이도 없었다. 주인아줌마에게 사정을 얘기해 봤지만 보증금에서 빼겠다는 야박한 대답만 돌아왔다. 택배 상하차나 주말에 막노동이라도 가야 하나 고민 중이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1개월 전 막노동해서 힘들게 모아둔 150만 원. 그 피 같은 돈으로 주식을 시작했다. 코로나 때문에 기업은 사람을 뽑지 않고, 아니 코로나 아니었어도 지방 전문대 졸업한 상훈이 연봉이 괜찮은 회사에 들어가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학교 선배들 대부분 소기업에 다니면서 최저임금이나 그 언저리 월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었다. 2020년 최저임금 8,590원, 월급으로는 1,795,310원. 대부분 선배들의 월급은 200만 원 언저리였다. 그 돈이면 혼자는 살 수 있다. 원룸에 살면서 차도 한 대 굴리면서 회사에서 12시간 일하고 하면서 살 수 있다. 하지만 결혼하는 순간 현실이 뱀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면서 앞으로 다가온다. 집 대출금에 먹고사는 생활비, 아내와 맞벌이할 때면 그나마 괜찮지만 임신해서 아내가 휴직에 들어가면 '헬'이 열리는 거다. 그리고는 평생 회사에 메여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가장이 되는 거지.
가끔 결혼한 선배들과 술 한잔 할 때면 항상 선배들이 이렇게 얘기한다.
"야! 상훈아.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아. 그래야 인간답게 살 수 있어."
"결혼하고 애 가져봐! 애는 너무 이쁘지만 현실은 장난없다."
"현실이 이런데 애를 낳으라고? 애 낳으면 나라에서 키워줄 거야?"
이런저런 신세 한탄들을 안주삼아 한 잔, 두 잔, 하다 보면 술 먹기 전보다 마음은 더 무거워진다. 이럴 거면 술을 왜 먹었지? 기분 좋자고 먹은 건데...
상훈 나이 24살. 마음은 점점 더 조급해지는데 현실은 코로나로 더 힘들어졌다. 그나마 하고 있던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점주가 시간을 줄이자고 한다. 최저임금이 상승하면서 그나마 하던 시간을 줄였는데 다시 시간을 줄이자니 사장님도 힘들다는 건 알고 있지만 상훈도 힘들다.
이때 시작한 주식. 살 길은 이거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작된 상한가 릴레이. 150만 원으로 시작한 상훈의 주식은 3주 정도가 지나자 거의 1억 원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1억 원은 지금 2억 원이 되었다. 1개월 동안 거의 매일 상한가를 기록했다.
'이거 대한민국 주식 신기록이지 않을까?'
상훈은 잠시 생각했다. 준현이 한테 소스를 주고 싶지만 그랬다가
'장이 변하면 어떡하지? 올라야 될 주식이 안 오를 수도 있어.'
'일단 내가 돈을 많이 벌고 준현이도 도와주자.'
상훈의 집은 어려서부터 넉넉한 편은 아니었다. 상훈의 기억이 있는 5~6살 때 집은 2층 주택 집의 일부를 사용하는 전셋집이었다. 큰 2층 주택 집이었는데 주인집은 1층에 살고 2층은 전세를 주었다. 그리고 1층의 뒤쪽 일부를 상훈이네 집이 사용하고 있었다. 상훈이네 집은 주택 대문이 아니라 뒤쪽 쪽문을 별도로 사용했고 쪽문을 열고 들어오면 일자로 길쭉한 마당 끝자락에 화장실이 있었다. 화장실은 수세식이 아니라 재래식이었고 전등은 있었지만 켜나 마나 한 것이라 밤에 화장실을 갈 때면 형과 함께 가서 교대로 플래시를 비쳐주곤 했었다.
마당을 지나면 임시로 만든 듯한 쪽문을 지나 연탄아궁이가 있었다. 아궁이를 지나 계단을 올라가면 나오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부엌이었다. 부엌과 방 두 개가 일자로 있는 형태의 집이었다. 제일 안쪽 방은 형과 상훈이 썼고 중간 방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쓰시는 방이었다.
그 집에서 초등학교 6학년까지 살았다. 어린 마음에 집이 부끄러워서 친구들을 집으로 데리고 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른 아이들은 생일 파티를 해달라고 부모님께 조르지만 상훈은 어머니가 생일 파티를 하게 친구들을 데리고 오라고 하셔도 그런 적이 없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20평짜리 주공 아파트 청약에 당첨이 되어 이사를 갔다. 처음 살아보는 아파트에 상훈과 형은 신이 났다. 그때 난생처음으로 내 방도 가지게 되었다. 그때 공부를 열심히 했어야 했는데...
상훈은 공부에는 영 취미가 없었다. 중, 고등학교 때 성적은 반에서 중간에서 뒤쪽이었다. 애초부터 4년제 대학에 갈 생각이 없었다. 취업 잘되는 전문대에 가서 빨리 졸업하고 돈이나 벌고 싶었다. 그리고 전문대에 입학했고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다녀왔다.
상훈에게는 절친한 친구가 5명이 있다. 준현을 포함한 이 6명의 친구들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의 모두 함께 다닌 친구들이다. 상훈와 준현은 공부와 담을 쌓았지만 나머지 4명의 친구들은 중, 고등학교 내내 전교 상위권을 유지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어릴 적 상훈은 이제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었다. 친구들이 공부를 잘하는 것이 조금 부러운 정도였다.
하지만 군대를 다녀와 만난 친구들은 상훈과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의대와 치대에 진학한 두 녀석은 내 후년이면 인턴을 시작한다고 하고 서울의 명문대에 진학한 두 녀석은 유수의 대기업과 은행들을 취직 행선지로 얘기하고 있었다. 상훈이는 있는지도 모르는 회사들도 있었다. 녀석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상훈과 준현은 소주를 한 잔 더 마셨다. 여태껏 무엇을 하며 살았던건가? 학교 다닐 때, 단지 공부의 차이가 지금 현실에서는 도저히 메울 수 없는 간극이 되어 마치 성벽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도 있고 다른 거를 잘하는 사람도 있지."
"그래 맞아, 우리는 아직 잘하는 거를 못 찾은 거뿐이야!"
워낙에 친한 친구들이라 안 그런 척했지만 배신감? 위축감? 자괴감? 무엇인지 모를 복잡한 마음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학교에 복학하고 상훈은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열심히 무엇인가를 해본 적이 없을 만큼 열심히 했다. 그 덕에 과에서 상위권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취직운이 없는 것일까? 코로나가 터지고 가뜩이나 좁았던 취업문은 거의 닫히다시피 했다. 직원을 뽑는다는 공고 자체가 평소의 10분의 1도 안될 만큼 취업시장은 얼어붙었다.
그사이 학교는 졸업을 했다. 졸업을 유예하고 취직을 노려볼까 생각해봤지만 일부이긴 하지만 등록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졸업 유예는 마음을 접었다. 학교는 졸업했지만 취업은 되지 않았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낮에는 공부를 했다. 무슨 공부를 해야 할지 몰랐지만 일단 영어 공부부터 시작했다. 그 무렵 상훈과 같은 처지의 준현과 의기투합했고 함께 공부하기로 했다. 말이 공부지 도서관에서 자리 잡아 놓고 20분에 한 번씩 담배 피우고 눈 맞으면 당구치고 PC방 가기 바빴다.
3개월을 그렇게 보냈다. 그때였다. 청천벽력의 소리가 전해진 것이... 20살 때부터 사귀어온 하나뿐인 여자 친구 수정이 늦은 시간에 잠깐 보자고 한다. 20살 때 학교에서 만나 사귀기 시작해서 군대 다녀온 시간도 모두 기다려준 착해빠진 여자 친구의 심각한 목소리가 귀를 때리듯이 들려왔고 무슨 사달이 날것 임을 직감했다. 수정이는 전문대에 입학했지만 입학한 해에 자퇴를 하고 2년간 재수를 해서 지금은 지방의 국립대에 다니고 있었다.
"오빠! 계속 이렇게 살 거야?"
"내가 뭐?"
"앞으로 어떻게 살 건데? 계획은 있어?"
"코로나도 없어지고 경기도 좀 풀리고 해야..."
"그럼 코로나 없어지고 경기 풀릴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지금처럼 살겠다고?"
"그럼 어떡하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할 수 있는 게 없어? 할 수 있는 걸 찾아본 적은 있고?"
"너까지 나한테 왜 이래? 너까지 나한테 이러지 않아도 나 충분히 힘들거든..."
"힘들기는 해? 내가 보기엔 지금 만족하면서 살고 있는 거 같은데?"
"만족하기는 누가 만족한다고 그래?"
"그래 이런 잔소리도 이제 마지막이야."
"무슨 소리야?"
"오빠, 이제 그만하자, 지긋지긋하다."
"헤어지자고? 그래 해어져! 누가 붙잡을 줄 알고? 너는 이제 좋은 대학 다서 나랑 수준 차이 난다 이거지? 그래 끝내, 끝내자고."
"그래 진짜 수준 차이나네, 오빠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어? 그래, 이제 됐어"
"그래! 잘 가라. 잘 먹고 잘 사시고요."
"잘 살아, 정신 차리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수정은 뒤돌아서 걸어갔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아래로 사라져 가는 그녀를 뒤로하고 상훈은 멍하니 한동안 서있었다. 서로 집안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살갑게 대하고 인사성 좋은 그녀를 어머니도 아주 마음에 들어하셨는데... '엄마! 밥 주세요' 하며 들어서는 나를 마치 아들처럼 대해주신 수정이 어머님도 계시는데...
원룸으로 들어가면서 소주 5병을 샀다. 평소에는 소주 한 병 반이면 술에 취했는데 오늘은 취할 것 같지 않았다. 안주는 없다. 돈도 없는데... 밖에서 술을 먹으면 사고 칠 것 같고 준현이라도 불러서 술 한잔 먹으려고 했지만 오늘은 혼자 먹어야 될 거 같다. 그렇게 한 병, 두 병, 세 병을 병째로 목에다 들어부었다. 현실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세상이 싫었다. 그냥 세상이 다 없어져버렸으면 했다. 그러다 나는 지금까지 뭘 하고 살았는지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기억이 없다. 새벽에 소변이 마려워 잠에서 깬 상훈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이렇게 머리가 아플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소주를 그렇데 들이부었다니... 화장실을 다녀와서 침대에 앉았다.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도 헷갈렸다. '수정이하고 해어 진건가?' 머리가 깨질 것 같아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현관문 앞에 무언가 시커먼 사람 형상이 보였다. 순간 상훈은 온몸의 털이 다 곤두서며 소름이 쫘악 돋았다.
'강도 일까?'
'내가 문을 안 잠겄나?'
'소리치면 저 사람이 나갈까?'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