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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드라 Dec 01. 2020

아빠! 배고파

당신의 의미

 이제 육아휴직을 시작한 지 5개월이 되었다. 처음의 거창했던 목표들은 하나둘씩 바이 바이 했지만 애들과 가까워지고 집안일의 고충을 몸에 새길수 있었다.


 아침에 카톡이 하나 왔다. 회사 다닐 때 친하게 지낸 후배였다. 동향이고 대학교도 과는 다르지만 같은 학교를 나온 후배라 회사 다닐 때도 좀 더 각별하게 생각했던 후배였다. 건강은 괜찮으시냐고 (내가 그 정도 나이는 아니지 않니?) 묻고는 저녁 한 끼 함께 먹고 싶었는데 코로나가 다시 기승을 부리는 바람에 좀 그렇다며 보고 싶다고 카톡을 보냈다.


 남자한테 보고 싶다는 카톡을 받았는데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는 건 이 후배의 평소 심성을 내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 일 것이다. 


 오래전에 휴대전화를 분실한 적이 있었다. 연락처가 백업도 안되던 시절이라 휴대전화에 저장된 천 개 가까운 전화번호가 다 없어지고 말았다. 당장 외우고 있는 전화번호는 몇 개 되지 않았다. 어떻게 하나 걱정했지만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렇게 물어물어 전화번호를 다시 저장하고 하면서 느낀 것은 '아~ 내가 이 많은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있지만 실제로 연락하고 최근에 연락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 사람은 그러게 많지 않구나.'였다.


 천 개 가까운 전화번호 중 몇십 개를 제외하면 없어도 아무 지장 없는 연락처였던 셈이다. 굳이 너무 많은 관계에 얽매여 살아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육아휴직을 시작하고 5개월의 시간 동안 회사 관련된 사람 중에 내가 먼저 연락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내심 누가 연락을 주는지 안 주는지 보고 싶은 못된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결과는 참 의외였다. 내가 회사 다니면서 친하다고 생각하고 가깝다고 생각한 선배 중에 카톡 한 번 없는 사람도 있었던 반면에 업무 관련해서 내가 질책도 하고 좀 모질게 대했던 후배는 잘 지내시냐며 살갑게 한 번씩 연락을 한다.  


 물론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니 먼저 연락은 안 하지만 마음으로 걱정하고 다시 만나면 누구보다 반겨주는 사람도 있을 테고 앞에선 살가운 척 하지만 뒤에서 뒷담 화하는 사람도 있을 터이다. 하지만 이래나 저래나 지금의 나는 너무 많은 관계 속에 얽매어서 허우적거리지 않을 수 있다. 나와 마음이 맞는 사람, 만나면 편한 사람, 결이 맞는 사람들과 편하게 지내면 되는 것이다.


 행복과 불행과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원인 중 인간관계가 85%를 차지한다고 한다. 사람 간의 관계에 있어서 정답은 없다. 정답이 없기 때문에 어려운 것 같다. 그러니깐 굳이 불편한 사람을 만나서 에너지 낭비하고 스트레스받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그게 일과 관련이 되면 말이 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관계를 떠나서 살 수는 없겠지만 그 관계에 억눌려 살아가 필요는 없다.


 아침에 카톡을 준 후배에게 나는 어떤 의미 인지 모르겠지만 오늘 나에게 그 후배는 따뜻한 마음을 안겨준 따뜻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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