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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드라 Dec 17. 2020

늦었지만 괜찮아, #2. 어머니

#2. 어머니

 수능 시험을 마치고 한창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다닐 때, 어머니는 허리가 아프다고 하셨다. 그래서 자기 전에 항상 수건을 물에 적셔서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린 다음 허리 온찜질을 해 드리고는 했다. 연년생이지만 형은 생일 빨라 1년 일찍 학교에 들어가서 형과는 2학년이 차이가 났다. 그러니깐 형이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8년 동안 어머니와 아버지는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다. 중학교 시절부터 새벽에 영어학원을 다녔고 고등학교 때는 아침 6시 20분까지 등교해서 밤 12시에 하교하는 아들 뒷바라지하신다고 정신이 없으셨다. 급식도 없던 시절이라 점심, 저녁 도시락 2개를 싸야 했고 12시에 자율학습 마치고 들어오는 아들 간식이라도 챙겨주시려고 그 시간까지 안 주무시고 계셨다. 이제 막내아들이 대학을 가서 그 힘든 시절이 마무리가 되었는데 허리가 아프시다니 형과 나 때문에 고생하셔서 그런 듯해서 더 마음이 안 좋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대학에 입학했다.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람들과 정신없는 대학 새내기 시절을 보내고 있었는데 어머니께서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허리가 얼마나 아프시길래 입원을 하셨을까 하고는 병원에 갔는데 어머니가 환자복을 입고 계신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평일에는 학교를 가야 하니 금요일에 수업 마치면 어머니가 계시는 병원에 가서 일요일 저녁까지 병원에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병원에 계시는 시간이 길어져 갔다. 분명히 어머니는 허리가 아프신데 병원에 계속 계셔야 되는 건가 싶었지만 아버지와 친척들 누구도 어머니의 병명을 말해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마찬가지로 병원에 가서 우연히 어머니의 차트를 보게 되었다. 거기에는 'Stomach Cancer'라고 선명하게 쓰여있었다. 어머니 앞에서 울 수는 없었고 어머니 병간호하시느라 병원에서 계속 계시는 아버지를 뒤로 하고 집으로 가면서 목놓아 울었다. 울면서 형에게 전화를 했는데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눈물을 참으면서 나를 안심시키던 형의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어머니의 병명을 알고 난 이후부터 어머니의 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안 좋아지고 있었다. 배에는 이미 복수가 차오르고 있었고 옆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거동이 불편해지신 상태가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수술이나 항암치료가 의미가 없을 정도로 늦었던 것이다. 허리가 아프다고 하셨을 때는 이미 위에서 시작한 암이 전이가 되어서 허리에 까지 영향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집에서 허리 찜질이나 해드리고 있었다니 무능한 나 자신이 몸서리치게 싫었던 기억이다.


 아버지도 고생이 많으셨다. 개인택시를 하셔서 그나마 시간 조절이 가능하시니 어머니 곁에서 하루 종일 병간호를 하셨다. 하지만 몇 달 동안 계속된 병원 생활에 지쳐가고 계셨다. 그리고 경제적인 문제도 있으셨을 텐데 전혀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 하루 종일 병원에 계셔야 하니 개인택시 운전은 당연히 하실 수 없고 아들 둘이나 대학을 다니고 있었으니 학비에 생활비에 부담이 만만치 않으셨을 거다. 주말에 있다가 일요일 저녁에 돌아갈 때면 용돈을 주셨는데 아버지에게 티는 내지 않았지만 나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그래서 학교 다 그만두고 돈이나 벌어서 아버지한테 도움을 드리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건 아버지가 더 싫어하실 듯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공부하는 거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지는 그 시기 병원비와 우리 학비, 생활비 등을 감당하시려고 대출까지 받으셨다. 그렇지 않아도 마르신 편이셨는데 어머니 병간호를 하는 동안 더 수척해지셔서 더 마음이 아팠다.


 시간이 흘러 5월이 되었고 대학병원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집으로 가시는 게 어떻겠냐고 했고 어머니도 집으로 가고 싶어 하셨다. 그날 집으로 가서 혼자 대청소를 했다. 몇 달 동안 아버지, 어머니가 안 계셨던 집이라 치울게 많이 없었지만 그래도 어머니가 오시기 전에 깨끗하게 해놓고 싶었다. 


 어머니는 화초를 좋아하셨다. 넓지도 않은 아파트 우리 집 안은 항상 정글이었다. 어머니께서 얼마나 애지중지 키우셨는지 항상 잎에서는 광이 나서 반질반질했다. 따로 어머니께서 뭐라도 주시는지 화초들은 엄청 잘 자랐고 천장까지 닿은 녀석들이 많이 있었다. 어머니는 입원하시기 전에 그 화초들이 걱정이셨다. 내가 나름대로 돌본다고 돌봤지만 어머니의 정성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대청소를 하면서 말라버린 화분들은 정리하고 잘 자라고 있는 녀석들을 앞으로 배치했다. 다시 물도 주고 잎도 한 번씩 다 닦았다. 다음날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집에 돌아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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