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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드라 Dec 16. 2020

아빠! 배고파, 사춘기

사춘기

"딸! 이것 좀 해줄래?"

"싫어"

"딸! 같이 산책하러 가자."

"싫어"


 '싫어'가 입에 붙어 있는 초등학교 4학년 우리 딸. 방에 들어가면 문부터 잠근다. 이제 사춘기가 올 나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겪으니 뭐랄까 좀 당황스럽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하고 가족보다 친구가 더 중요해지는 시기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우리 딸이 저렇게 행동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말만 하면 싫어가 나오니 나도 별로 말 걸고 싶지 않아 지지만 그래도 원활한 부녀관계를 위해 내가 한 수 접고 들어가야지 어쩌겠나. 돌이켜보면 우리 부모님이 사춘기 시절 나에게 한 수 접어 주신 것을 지금 내가 우리 딸에게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내 기억에 나의 사춘기 시절은 별 탈없이 물 흘러가듯 넘어간 듯하다. 아버지 생각은 다르실 수 있겠지만... 중학교 시절부터 학원 다닌다고 정신없이 바빠서 집에 있는 시간도 많지 않았지만 그 시절 특징적인 사건은 몇 가지 기억이 난다.


 나는 중, 고등학교 6년을 개인택시 하시던 아버지 택시를 타고 등교했다. 고등학교 때는 아침에도 보충수업을 하던 시절이라 아침 6시 20분까지 등교를 해야 했다. 급식도 없었기에 어머니는 5시에 일어나서 점심, 저녁 2개의 도시락을 싸고 아침 식사까지 챙겨주셨다. 아버지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셔서 학교까지 나를 데려다주시고 일하러 가시곤 했다. 그리고 밤 12시에 자율학습이 끝나면 다시 데리러 오셨다. 형과 내가 대학을 갔을 때 우리 부모님은 나보다 더 기쁘셨을 것 같다.


 중학교 2,3 학년 시절, 집에서 학교까지는 버스로 9~10코스 정도 되는 거리였다. 하루는 아침을 먹고 있는데 신문을 보면서 먹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밥 먹으면서 신문 보는 거 아니라고 하시면서 신문을 가져가셔서 본인이 보시는 거다. 순간 울컥해서 나 보고는 하지 말라고 하면서 아빠는 왜 밥 먹으면서 신문 보냐고 소리치면서 가방 들고 밖으로 나왔다.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느라 용돈도 받지 않고 나와서 땡전 한 푼 없었기에 학교까지 뛰어갔다가 집에 올 때도 걸어서 왔다. 집에 가면 혼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는 그와 관련해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는 형과 나에게 한 번도 체벌을 하신 적이 없다. 엄마한테는 많이 맞았지만...  


 '싫어'가 습관적으로 나오는 우리 딸을 보면서 한소리 할까 싶다가도 그 시절 우리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꾹 참고 있다. 한소리 해봤자 부작용만 생길 것이 뻔한데 뭐. 그래서 꾹꾹꾹꾹 참고 있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것이 있을 때는 조용히 얘기한다. 조용히 얘기해야 한다. 내 말을 뒷등으로 듣는 것 같더라도 큰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얘기해야 한다. 그래야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저 녀석도 나중에 결혼하고 애 낳아서 키우다가 '엄마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어' 소리를 들어봐야 내 심정을 이해하겠지? 


 아버지한테 대들고 뛰쳐나가던 녀석이 아빠가 되어서 딸내미 안 뛰쳐나가게 하려고 고생 많다. 아~ 우리 아버지 보고 싶네. 전화나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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