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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드라 Jan 06. 2021

늦었지만 괜찮아, #4. 군대

#4. 군대

  지금은 없어진 의정부 306 보충대에서 각 사단 신병교육대로 배정을 받는다. 전방에 위치한 부대들이 대부분 힘들지만 그중에서도 악명이 높은 부대는 3, 8, 11 사단 정도였다. 그런데 지지리 복도 없지 3사단에 배정이 되었다. 젠장 망했다. 3사단이면 이름도 무시무시한 백골부대. 보충대에서 출발한 군용 트럭이 철원에 들어서자마자 하얀 백골상이 여기저기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가슴의 구든 거림도 빨리 지기 시작했다.


백골상


 드디어 도착한 신병교육대. 육공트럭에서 내리면서부터 조교들이 몰아치기 시작한다. 우와~ 20년이나 넘게 지났는데도 아직 생생히 기억나는 걸 보니 힘들긴 했나 보다. 5월에 군에 입대할 당시 내 몸무게가 95Kg 정도나 나갔다. 군대 가기 전에 친구들도 많이 만나고 방탕한 생활을 했던 탓에 몸무게가 사상 최대치를 찍고 있었다. 그런데 100일 휴가를 나올 때 나의 몸무게가 75Kg였으니 100일 만에 20Kg의 다이어트가 되었다. 뭐 먹는 건 세끼 밥뿐이고 몸을 움직이는 운동량은 상상을 초월했으니 당연한 거겠지. 100일 휴가 때 친구들과 약속을 하고 약속 장소에 일찍 나가 있었는데 친구들이 나를 못 알아보고 지나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마 살면서 나를 가장 많이 변화시킨 곳이 군대일 것이다. 군에 가기 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조금만 힘든 일이라고 생각되면 시도하지 않고 빠져나갈 방법을 먼저 생각하고 포기하기 일쑤였는데 군대에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많이 강해졌다.


 군에서는 아침 기상과 동시에 점호를 한 후, 웃통 벗고 구보를 실시한다. 내가 있던 부대는 산 중턱에 위치해 있어서 구보 코스가 조금은 힘들었다. 부대 밖으로 빠져나가서 크게 돌아서 들어오는 코스였는데 나갈 때는 내리막이지만 들어올 때는 오르막이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자대 배치받은 첫날 아침 구보에서 낙오를 했다. 신병교육대에서 했던 구보는 구보도 아니었다. 원래 오래 달리기를 잘 못했었는데 오르막을 버티지 못하고 뒤 쳐 저 버렸다. 살이 갑자기 많이 빠지면서 무릎도 안 좋았고 이런저런 핑계가 있어지만 결론은 신병이 첫날 구보에서 낙오를 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아침 점오를 마치고 엄청나게 깨졌다. 그때만 해도 구타가 조금은 남아 있던 시절이라 촛대고 까이고 맞기도 했다.


 아침 몸풀기 같은 구보를 낙오하고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 소대장과 면담을 하고 그날 저녁부터 일과를 마치고 연병장을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저녁에 연병장을 돌기 시작하고 1주일 정도 후, 구보를 낙오하지 않고 끝까지 뛰는 것을 성공했다. 그때 많은 것들을 느꼈다. 하면 되는구나 라는 것을...


 처음에는 몰랐지만 신병 시절 나는 관심 사병이었다. 관심 사병이란 문제 될만한 사항이 있어 관찰을 하고 특별히 관리를 하는 군인이라고 보면 된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지 1년도 되지 않았고 육체적으로도 많이 약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구보를 극복했던 것처럼 하나씩 극복하고 군생활을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다.


 내가 군생활을 한 철원은 추위로 악명을 떨치는 곳이었다. 군부대는 산속에 있기에 더욱더 추울 수밖에 없었다. 온도계가 영하 30도 밖에 표시되지 않아서 최하 얼마까지 온도가 내려갔는지는 모르겠다. 그 영하 30도 이하의 날씨에서도 아침마다 웃통 벗고 구보를 했고 혹한기 훈련을 나가면 땅을 파고 들어가서 텐트를 쳤다. 그리고 더욱 군인들을 괴롭히는 것이 바로 눈이었다. 밖에서는 겨울이 되면 눈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군에 있을 때는 치워야 하는 쓰레기랑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눈을 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라고 불렀다. 철원의 추위가 얼마나 대단한지 어린이날과 추석 연휴에도 눈을 제거하는 제설작업을 해 봤을 정도였다.


 군에서 배운 이른바 깡은 제대하자마자 어디로 가버렸는지 사라진 것 같았지만 가끔 내속에서 살아날 때가 있다. 포기하고 싶을 때, 죽을 것 같이 힘들고 숨이 턱까지 차서 정말 죽을 것 같을 때가 있지만 그 순간을 견뎌내면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기억하고 있다.


 군대 얘기를 정말 오랜만에 해 보는 것 같다. 솔직히 군생활은 힘들게 했지만 군 관련 얘기하는 걸 별로 즐겨하지는 않는다. 주변에 군대를 정상적인 일반병으로 다녀온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것도 영향이 있겠지만 나보다 힘들게 군생활 한 사람을 본 기억도 잘 없다. 이야기 수준이 맞아야 맞장구도 치고 하면서 열심히 이야기할 텐데 말이다.


 이 추운 날씨에 나라를 지키고 있을 멋진 군장병들이 안전하게 집에 돌아오길 바라본다.

 

 "백골!"


 3사단 백골부대의 경례구호는 "백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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