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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드라 Nov 21. 2021

퇴근길 수박 한 덩이

술자리 귀갓길

 저녁 10가 넘어서면 형과 함께 아버지를 그렇게 기다렸다. 개인택시를 운행하시던 아버지는 여름이면 거의 매일 수박을 한 덩이 사 가지고 귀가하셨다. 그렇게 기다리던 아버지가 오시면 아버지보다 수박을 더 반기며 반으로 잘라진 수박을 숟가락으로 퍼먹는데 정신이 없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아버지의 퇴근길, 귀갓길에 사 오시던 간식이며 먹을거리에 대한 추억이 있지 않을까 싶다.


 해외 지사에 근무하던 후배가 3년 만에 귀국했는데 서로 바빠서 보지 못하다가 몇 명이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술도 한 잔 했다. 오랜만의 술자리라 시간이 길어졌고 식당에서 나와서 집으로 가는 길에 어묵의 유혹을 뿌리치고 못하고 먹다가 애들 생각이 나서 어묵을 샀다. 집 앞에 다 와서는 아이스크림까지 한 가득 사들고 도착한 시각은 11시였다. 애들과 와이프가 자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을 열고 현관에 들어서는 내 손에 들려있던 어묵과 아이스크림은 누군가에 의해 탈취되었다.


 비닐봉지를 열어보면서 아빠는 보지도 않고 '다녀오셨어요?'를 외치는 아이들을 보니 어릴 적 아버지의 수박 한 덩이를 기다리던 형과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마치 저녁을 굶은 것처럼 어묵을 먹고 아이스크림을 해치우는 아이들을 보니 행복했다. 아이들이 자라고 시간이 지나면 술에 취해서 밤에 자꾸만 뭔가를 사 오는 아빠의 모습을 나처럼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할까?


 사실 회사를 다니면서 행복했던 기억보다는 힘들고 뭐 같고 걍 때려치우고 말아? 하는 순간들이 더 많았던 듯하다. 월급날의 달콤함이 주는 마약성 진통제의 효력이 사라져 가고 진급은 한참있어야 하고 연봉 상승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퇴근하고 집에서 나를 반겨주는 와이프와 아이들, 술자리 후 내 손에 들려있는 간식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독촉 전화 같은 소소한 행복의 기억으로 힘든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학창 시절에 공부를 하다 보면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두 가지 유형이 있었다. 천재적인 재능으로 별로 노력하지 않아도 결과가 잘 나오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에 타고난 재능은 없지만 끊임없이 부단한 노력으로 결과가 좋은 아이들이 있었다. 사실 전자의 유형은 숫자는 많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과 비교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유형의 아이들은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나의 노력으로 그런 유형의 아이들은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더 무서운 애들은 오히려 후자였다. 정말 성실하게 노력하는 아이들은 그 이상으로 노력하지 않는 한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야구에서도 한 시즌을 크레이지 모드로 보내면서 MVP를 차지한 선수보다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는 누적 성적이 좋은 선수를 더 중요시한다.


 시대가 바뀌면서 회사에서 어떻게 하면 성과를 낼 수 있을까 보다는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통한 파이어족이 대두되었다. 조기 은퇴를 통해서 자기만의 인생을 가꾸어가는 사람들이 부각되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조직보다 개인의 삶을 중요시하는 흐름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의 개발을 위해서든 먹여 살려야 하는 부양가족이 있어서든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하루하루 성설 하게 일하는 많은 사람들은 정말 존경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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