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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드라 Apr 28. 2023

제주야! 나 또 왔어, 4일 차

4일 차, 일체유심조

 어제와 비슷한 시간이 눈이 떠졌다. 많이 걸었지만 사우나에서 근육을 잘 풀어준 덕분일까? 다리를 비롯한 나의 신체 중 어느 한 곳도 못 걷겠다고 이야기하는 녀석이 없었다. 그렇다면 걸어야지!


 6시쯤 숙소를 나서 2코스의 시작점인 광치기해변으로 향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날씨는 정말 좋았다. 해는 쨍쨍하게 내려쬐고 있지만 시원한 바람이 부는 정말 걷기 좋은 날씨였다.



 반짝이는 태양과 성산일출봉을 우측으로 하고 2코스의 시작인 둑길을 걷기 시작했다. 어제처럼 바로 오름과 같은 난관은 없이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그러다 나타난 식산봉, 봉우리이기는 하지만 동네 뒷동산 정도의 높이라 부담 없이 넘어갔다.


 식산봉을 넘어가면 오조리가 나타난다. 작은 마을을 지나치고 다시 계속 걸어가 성산읍에 도착했다. 성산읍에는 좀 이른 감이 있지만 중간 스탬프가 있다.



 중간스탬프를 찍고 성산읍을 벗어나 걷다 보면 2코스의 하이라이트 격인 대수산봉이 나타난다. 요 녀석만 잘 넘어가면 이후에는 평탄한 코스의 연속이다. 너무 걱정을 했던 탓일까? 대수산봉은 생각보다 평안히 넘어갔다. 역시 정상에서 보는 성산일출봉 풍경은 너무 좋았다.



 대수산봉을 넘어서 그다음부터는 평탄한 길의 연속인데 너무 평탄했을까?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대수산봉 이후에는 은평포구에 도착할 때까지 밭길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올레길의 대부분이 이런 길의 연속이다. 유독 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답은 내 마음에 있었다. 식산봉을 넘어서 오조리에 들어설 무렵부터 계속해서 회사일로 전화가 왔다. 특별하게 문제가 될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안식월 전에 마무리한다고 한 일들 중에서 확인이 필요한 일, 몇 가지가 동시 다발로 생겼다. 하려고 마음먹으면 모바일로도 확인하고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인데 휴가 전에 확실히 매듭지어지지 않은 일에 대한 짜증 같은 것들이 섞이면서 마음이 많이 복잡해졌다.


 별 일 아니었지만 마음에 부담이 생기고 생각이 많아지고 나니 어제 그렇게 신나게 걸었던 올레길이 지겹고 짜증이 났다. 그런 마음으로 걸었으니 주변 풍경인들 좋게 보였을 리 만무하고 당연히 사진도 몇 장 없다. 어제 같은 마음가짐이었다면 지루하게 이어지는 길에서도 그 길만의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며 재미를 만들었겠지만 내 마음은 전혀 그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렇게 짜증이 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나는 올레길 2 코스만의 재미를 찾지 못했다.


 어찌어찌하여 2코스의 종점인 은평포구 도착했다.



 그래도 도착했다고 스탬프 찍고 인증샷까지 다 찍었다. 저 때쯤 해서는 마음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고 일도 어느 정도 다 처리를 했다.

 

 '일체유심조'라... 내 마음이 걱정을 만들고 내 마음이 짜증을 만들고 내 마음이 올레길 2코스의 재미를 가져가 버렸다.


 그렇게 2코스를 마무리하고 버스를 타고 출발점인 광치기 해변으로 돌아왔다. 주차장 근처에 있는 스벅으로 가서 급히 아메리카노 충전을 했다.



 내 마음은 어지러웠지만 제주의 날씨는 정말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가볍게 요기도 하고 나서 뭐 할지를 생각하다 아까 대수산봉을 넘어가면서 지도에서 본 빛의 벙커가 생각났다. 아이들과 함께 오면 가보기 힘든 곳이라 바로 가기로 했다.



 가격이 좀 있는 편이었지만 이곳이 아니면 접하기 힘든 부분이 있어 과감히 입장했다.



 나는 그림에 문외한이지만 음악과 함께 계속 움직이는 영상을 넋 놓고 한참을 봤다. 나름대로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서 말이다.


 관람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서 어제처럼 사우나로 향했지만 금일 휴업이었다. 다른 사우나를 찾기도 귀찮고 해서 숙소로 와서 샤워를 하고 좀 쉬었다가 다시 밖으로 나왔다. 저번에 숙소 근처에 봐둔 국수집이 있어 바로 갔다. 내가 아는 그 유명한 삼대국수회관의 분점인지는 모르겠지만 맛있게 고기 국수를 먹었다.



 국수를 먹고 또 스벅에 가서 밀린 브런치 글을 쓰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제 목표했던 2개의 올레길을 걸었으니 내일은 놀아야겠다. 그렇지만 또 일찍 일어나면 마음이 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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