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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Writer Oct 16. 2023

봉녀씨와 한낮의 데이트

내 엄마 봉녀씨

아침에 눈을 떴다 감았다 다시 뜨고 몸을 일으켜 물을 한잔 마시고는 건조대에서 잘 마른 수건들을 개어놓고 요가를 하기로 한다. 딱히 마음먹지 않으면 아무런 할 일도 없는 일요일 오전, 25분짜리 요가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 플레이 시키고 호흡을 천천히 하며 몸을 늘린다.


요가를 하면서 문득 봉녀씨에게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어젯밤 그녀가 전화를 걸어 통화를 했던 기억이 떠오르며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추석에 놓고 온 점퍼도 찾아와야겠다. 그리고 그녀와 점심도 함께하고, 그녀를 이끌고 산책도 해야지


전화를 해서 간다고 전하고 점심은 북엇국을 주문했다. 딸은 엄마의 밥이 먹고 싶었다.

그리고, 어제 예정했던 것보다 음주량이 많았음에…


나는 점심시간에 맞추기 위해 분주히 준비를 시작했다.

며칠전 산 열무김치가 맛이 좋아서 나누어 담고, 직장 동료가 농사지은 사과 한박스 구입한 것 중 몇 개를 봉지에 담았다.


그리고 집을 나서 새싹인삼을 사러 근처 하나로마트에 들렀다. 며칠전 장을 보다가 6년근보다 사포닌이 많다는 홍보 글에, 부담없는 가격대이기도 해서 한팩 사보았는데, 몇뿌리씩 통채로 먹기가 좋았다.

간김에 소고기 국거리와 무도 담았다. 뜨끈하게 끓여서 먹기 좋은 계절이니까.


강을 오른쪽으로 끼고 봉녀씨를 만나러 드라이브 하는 길. 강물이 햇빛에 반짝반짝 찰랑이는 것이 흥이 오르게 좋다. 날씨 참 좋구나. 하늘은 정말 하늘색이구나. 너무 파랗지도 않으면서 연한 빛깔로 가득 차있다.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운행속도는 느려진다. 주택가에는 횡단보도가 많기도 하다.

집앞 사도에 주차를 하고 단독주택의 2층으로 성큼성큼 올랐다.


봉녀씨는 상을 다 차려놓고 국을 담을 준비를 하고 기다리셨다. 나는 이미 마음이 포근하고 푸근하다.

밥솥을 여니 감자 두알이 밥알들 사이에 폭신하게 안겨 있다.

나는 공기에 감자를 한 알씩 넣어 밥을 푸고, 봉녀씨는 북엇국을 국대접에 담아 내어 우리는 식사를 시작한다.

아, 내가 가져간 열무김치도 한접시 담아 내었다.

식탁에는 고등어도 한마리 잘 구어져 있다. 봉녀씨는 열무김치가 연신 맛있다며 긴 줄기를 손으로 집어 밥위에 올리고는 한술 크게 입으로 가져가신다.

나는 뜨끈한 북엇국을 한술 뜨니 속이 벌써 풀리는 기분이다. 무를 넣어 시원하고 달걀이 알맞게 풀어져 보드랍다.

봉녀씨는 딸들이 혼자 혹은 둘이 와서 이렇게 밥을 같이 먹는 날이면 ‘같이 먹으니까 맛있네’를 연발하신다. - 그쵸. 밥상에 여럿이 둘러 앉아 먹으면 밥맛이 좋아져 밥 한 공기는 가뿐해지죠.  밥솥을 다시 열어 이 정도면 적당할까, 조금 덜까.. 밥공기에 밥을 새로 담으며 고민을 하지요.


‘밥먹고 우리 산책가요.’

둘이 먹어 더 맛있었던 밥상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마치고 우리는 차에 올랐다.

걸어서 20분쯤 나가야하는 목적지까지의 길은 삭막하고 재미없다. 20분을 그 길에 소비하고 싶지 않다.

적당한 곳에 주차를 하고 도심 한가운데 흐르는 하천의 도보길을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봉녀씨는 이제 빠르게 걷기도 힘들고 계단을 내려가고 올라가는 것도 젊은 시절만큼 성큼성큼 다닐 수 없어 속상해한다. 무릎도 발목도 70여년 세월의 힘을 견디며 살아온 만큼 많이 삐걱거린다.


저 멀리 천 한가운데 돌징검다리를 건너 반대편으로 넘어가서는 왔던 방향으로 되돌아 간다.

나올때 흐릿하던 하늘이 다시 쨍해진다. 해가 나오니 기분이 해맑아진다. 바람이 딱 적당하게 불어오는 날이다. 초속 몇 미터의 바람일까.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며 청량감을 전해주는 이 바람의 속도는.


파크골프장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근처 나무의자에 앉아 등으로 떨어지는 따스한 햇살에 등을 내어주고 파크골프를 치는 무리의 사람들을 관찰한다.

4명씩 한조를 이루고 있다. 골프공보다 훨씬 크고 알록달록한 공들을 골프채 보다는 다소  투박해보이는 스틱으로 힘껏 휘둘러 맞추면 공들이 저멀리 굴러간다. 홀 옆으로 Par4라고 쓰인 작은 안내판이 보인다.

깃발이 꽂혀있는 홀을 향해 공을 굴려 4명이 모두 홀인을 시키면 이내 다음 코스로 넘어가고, 다음 4명의 조를 이룬 사람들이 또 나타나 공을 굴린다.


파크골프를 이해하고 우리는 의자에서 일어나 다시 돌다리를 건너 차를 향해 움직인다.

한시간이 조금 넘은 산책이었다. 봉녀씨를 집에 모셔다 드리고 나는 다른 일정을 향해 또 움직일 것이다.

차안에서 봉녀씨는 집에 가면 한숨 잘것 같다 한다. ’응, 한숨 주무시고 나서 댄스 연습하고 저녁드셔요.‘

시에서 운영하는 여성회관에서 라인댄스를 배운지 4개월쯤 된 봉녀씨는 수업만으로는 따라갈수 없다고 인터넷TV로 유튜브를 보며 발동작도 익히고 손동작도 익히고 음악의 리듬도 익숙해지도록  개인레슨을 혼자하고 계신다.


아까 밥을 먹고서 10년도 더 전에 입었던거라며 댄스복을 가지고 나오셨다. 바지위에 차르르한 반짝이들이 촘촘히 박혀있는 스커트가 덧대어져 있다. 오래전에 봉녀씨는 에어로빅도하고 또 소셜댄스를 배웠던 이력이 있다 아직도 새 옷같은 그 댄스복을 입고 라인댄스를 추는 봉녀씨를 보고 싶다. 연말에 가족 공연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 봉녀씨는 ’배우길 참 잘했다‘고 하시는 라인댄스를 연습하고, 나 역시 ’시작하길 잘했어’ 라고 생각하는 탱고를 추는 저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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