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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Writer Oct 06. 2023

’재제소‘ 한 단어가 불러온 기억

내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 한토막을 가져와본다.

책을 읽다가 ‘재제소’란 단어 하나에 오래전 맡았던 그 목재소의 냄새가 문득 떠오르며 그 시절 그곳의 사람들이 연달아 생각이 났다.


그때 내가  11살,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아빠는 41살 이셨겠지.

아빠는  몸 담았던 회사를 그만두고, 다음 생계를 위해 했던 선택지는 동네 슈퍼였다.

내가 알기로 아빠가 연고하나 없는 대전으로 내려와 터를 잡으신 건 이곳에 어린시절 친구가 있었던 이유였다.

어떤 경로로 친구와 연락이 닿았고 그 가게를 세를 얻어 운영하게 되었는지 까지의 상세한 내막은

다음에 엄마에게 가면 다시 물어봐야겠지만..


우리가 살게 된 슈퍼, 그 가게는 뒤쪽으로 두개의 방과 부엌이 딸려 있는 살림집과 합쳐진 구조였다.

그 가게에서 조금 떨어진, 아마도 걸어서 2,3분 안쪽에 동네에서 꽤 큰 목재소가 있었는데,

그 목재소를 운영하던 분이 아빠 친구였고, 그 집에는 두형제가 있었다. 한 명은 나보다 나이가 많고 한 명은 적었다.

나중에 내가 고등학교 다닐 즈음, 우리 가게는 2층에 살던 원래 주인분이 다시 운영하겠다 하여 나오게 되었고

거기서 10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부모님은 가게를 얻어 운영하셨다.


우리집이 가게를 먼저 그만두고 그 동네를 떠났는지, 목재소 아저씨가 먼저 목재소를 닫고 떠났는지도 기억이 분명치 않은데, 이 역시 엄마에게 물어보면 알것 같다.


처음 몇년은 양쪽 집이 꽤 사이좋게 지냈고, 아빠들은 물론 엄마들도 자주 왕래하고 우리 세자매도 종종 놀러가 그 집 형제들과 잘 어울려 놀았다.

그집에 갈때마다 목재소는 항상 바쁘고 소란스럽게 돌아갔다. 여기저기 통나무와 재단된 목재들이 가득했고, 일하는 사람들이 나무를 나르거나 톱으로 자르거나 하는 풍경이었다.

나무 톱밥이 늘 바닥에 깔려있었고 공기 중에도 떠다녔다. 톱밥들은 옷에 달라붙어 나와 같이 돌아다니기도 했다. 우리는 작은 각목을 가지고 싸움 놀이를 하거나 방에 모여앉아 티비를 보기도 했다. 목재소 한켠에는 커다란 목재 바둑판이 있어서 오목을 두거나 알까기를 신나게 했다. 바둑을 두기도 했던것 같은데 제대로 배워본 적 없었다.


당연하겠지만, 목재소에는 항상 나무 냄새가 가득했다.

높은 천장 틈으로 들어오는 햇살과 그 빛속을 영유하던 나무 먼지들, 매끄럽게 잘려진 사각 목재의 뽀얗고 매끄러운 단면, 그리고 그 냄새.

페이지에서 ‘제재소’란 단어가 눈에 들어오자 갑작스럽게 떠오른 이 감각들,

그리고 그안에서 움직이던 아득히 멀게 느껴지는 시간속의 사람들

아, 내게 그런 시절이, 시간이, 그런 사람들이 있었구나.


오래전 삶의 무대를 떠나신 우리 아빠가 지금 살아계시면 계속 연락이 닿았을까

그 목재소 배경의 인물들은 다들 지금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나중에 엄마는 그 집 아주머니와 관계가 틀어졌는데, 엄마의 얘기에 내게는 아주머니의 이미지가 얄밉게 각인 되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잇속이 밝은 그 아주머니와 그렇지 못한 엄마의 관계에서 엄마가 상대적으로 속상한 감정을 많이 느꼈던 듯 하다. 지금 그때 일을 물어보면 뭐라 하실라나


문득 이렇게 30년도 더 넘은 시간속으로 순간이동 하듯 꺼내본 이야기,  이런 오래전 이야기를 줄줄이 꺼내보고 싶어진다.


한줄요약 : 단어 하나로 포착된 오래전 내 삶의 한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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