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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Writer Aug 20. 2023

일요일 아침,  드디어 글을 썼다.

일단 써보면 생각지 못하게 써지는 날이 또 있다.


일요일 아침, 2023. 8. 6.

눈을 떠 휴대폰을 보니 7시 45분이다.

잠깐 유튜브에서 영상 훑다가 점점 더워지는 걸 느끼며 ‘이렇게 시간 보내지 말고 일어나자’

라는 뇌의 강한 메시지에 몸을 일으켜 방을 나왔다.


화장실에서 본 내 얼굴, 땀인지 기름인지 얼굴이 번들번들 광이 나는듯하다.

가볍게 세수를 하고 아몬드우유(우유라고 부르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를 한 컵 따라 마시려다,

라테를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주 가끔 존재 확인하는) 에어로치노에 넣어 돌려본다.

이것도 거품이 잘 올라오려나?

다행히 우유처럼 풍성하게 거품이 만들어졌다. 굿~ 이제 커피를 내린다.

라테용 캡슐을 넣어 큰 컵에 내리고 얼음을 넣기 시작한다.

그러다, 그만 컵을 자빠뜨렸다. 커피는 반이상이 쏟아져 싱크대를 넘어 바닥으로 주르륵, 내 바지까지 적셔버렸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드네. 잠이 덜 깬 듯 멍하더니만 사고를 치는구먼

휴~ 물티슈, 휴지, 행주를 총 동원해 쏟아진 커피를 다 닦아내고, 다시 시작한다.

커피를 내리고, 얼음을 넣고 거품을 아직 꺼뜨리지 않고 기다려준 아몬드 우유를 조심스레 부어주었다.

‘오~ 커피에 부드럽게 내려앉는 밀크의 자태가 아름답구나.’라고 생각하며 한 모금 들이킨다.

시원함, 아몬드밀크 특유의 밍밍함, 그리고 이어 커피의 씁쓸한 맛을 차례로 느끼며 머리가 깨어나는 것 같다.

이 한 모금을 느끼고 명상에 들어갔다.

일찍 눈이 떠지는 날엔 꼭 하고 싶어 진다. 일찍 눈떠지지 않는 날들이 좀 더 많아지면 좋겠다.


5분 명상 유튜브 클립을 재생시키고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어왔다 나가고 불쑥 튀어나왔다가 사라진다.

‘아침 루틴을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 오늘 아들하고 또 헤어질 생각, 무얼 해서 먹여 보낼까..’


이제, 10분 요가를 검색해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늘 하던 거 말고 다른 걸 시도해 본다. 간단하지만 뻣뻣해진 몸을 풀기에 적당하다 싶은 걸 골랐다.

가볍긴 하지만 뭉친 어깨가 풀리는 듯했다.


이제 글을 써볼까?

유튜브 뮤직에서 스타벅스 매장 모음곡을 재생시키고, 한쪽에는 아까 만든 아아라(아이스아몬드라테)를 올려놓았다.

책상에 딱 자리를 잡고 아이패드 메모장에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어젯밤까지 글이 안 써진다며 고민했다.

아들한테 털어놨다. ‘아들, 엄마 머리가 멍청해진 건가, 머리가 안 돌아가, 어떡하지?‘

아들이 1도 고민도 없이 대답한다. ‘그럴 땐 안 하면 돼요, 안 써지면 안 하고 유튜브에서 재밌는 영상 보는 게 더 효율적이에요.‘


그래서 글을 쓰려고 붙잡고 있던 아이패드를 내려놓고 자러 갔다.

그게, 글이 그렇게 쓰고 싶다가도 어쩔 땐 아무것도 내놓지를 못하겠다.


내 안에서 무언가 차고 넘쳐 쏟아내고 싶을 때 글이 절로 써졌던 것 같다.

자판을 두드리다 보면 이렇게 글이 잘 써진다고? 싶을 만큼.


어제는 오전에 사무실도 나갔다가, 아들 픽업해서 밥 먹고, 책도 읽고, 아들 밥 해주고, 영화도 보고, 낮잠도 자고, 실내자전거도 타고, 넷플릭스 드라마도 한편 보고 참 많은 걸 했다는 생각이 든다.

저녁에 양치질하다가 아들한테 ’ 너 어제 양치는 하고 잤니? …‘ 묻다가 ’ 아참 너 오늘 왔지..‘

’왜 어제 온 거 같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쳐다보는 아들..

‘엄마가 그러니까 갑자기 저도 헷갈리네요.. 0.0’  


하루가 참 길었나 보다

그렇게 하루를 보냈고 글을 쓰려고 자판을 두드리지만 도무지 안 써져서 두 세 문장만 쓰고 저장한 글들이 서너 개는 되나 보다.

책을 읽다가, 영화를 보고, 요리를 하고 그러면서 글감이 생겼고, 글로 옮기려 해 봤지만 내 안에서 글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나만의 생각, 나만의 단어, 나만의 문장이 완성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들의 냉철한(?) 조언을 듣고 그냥 문을 닫았다.


오늘 아침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간 건 그 덕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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