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몰타-시칠리아 여행 06
몰타는 시칠리아 가기 위한 경유지일 뿐 큰 기대는 없었다.
한 가지만 빼고.
수도 발레타의 성요한 대성당에서 카라바조의 작품 보기.
미켈란젤로 메리지는 1571년 밀라노 근처 카라바조에서 태어나 밀라노 그리고 로마에서 활동하는데, 1600년대 초에 카라바조풍의 그림을 그리는 수많은 화가들이 생길 정도로 당시 예술계 인플루언서였다. (르네상스의 균질한 빛이 아니라 어둠과 빛의 대조. 키아로스쿠로라고 불러도 좋고 테네브리스모라고 불러도 좋은, 여하튼 어두운 공간에 인공의 빛을 쓴 것 같은 그림을 그리면서 미술계를 확 흔들어놓음)
그리고 개인적인 삶도 만만찮게 드라마틱해서
수많은 자잘한 범죄와 몇가지 중범죄 그리고 살인까지.
(기물파손은 기본, 폭행, 모욕, 불법무기소지 등등등)
여러 번의 감옥살이, 추방, 도피 등이 이어짐.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성품이었으나 그림 실력만은 출중해서 고객은 끊이지 않았고
카라바조가 저지르는 잘못을 쉴드쳐주는 고위급 고객도 있었음.
그러다 1606년 라누초 토마소니라는 부잣집 말썽꾸러기(꽤 순화한 단어)와 싸움 후 이놈
을 고자로 만들겠다고 칼들고 설치다가 결국 죽이게 됨.
지금까지는 쉴드쳐주던 고위급 고객도 손 못 쓸 정도로 토마소니 가문이 노발대발,
카라바조는 사형 선고를 받게 됨.
결국 로마에서 도망쳐 나와 나폴리를 거쳐 몰타에 도착.
몰타는 성 요한 기사단이 다스리던 영토였으므로 기사단장이 몰타의 제일 높으신 분이라고 볼 수 있는데
여하튼 그림 실력만은 인정받은 사람이므로 몰타의 수도 발레타의 성 요한 대성당의 제단화를 그리게 됨.
그게 <세례자 요한의 참수>, 1608년, 370x520cm.
세례자요한은 바른소리를 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다가
(당시 이스라엘 지도자 헤롯이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했고, 이에 대해 세례자요한이 했던 쓴소리가 마음에 안 든 헤로디아가 딸 살로메를 축제로 보내 의붓아버지-즉 자기 남편-를 꼬드겨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자르도록 함. 으읭스러운 곳이 한두군데가 아닌 막장극)
살로메가 부탁한 대로 은쟁반에 세례자요한의 머리를 올리기 위해 옥지기+사형수가 처형하는 장면.
본디 참수란 다른 극악무도한 사형법에 비해 점잖은 사형법이긴 했으나
(로마제국 시절엔 로마 시민만 참수형으로 죽을 권리가 있었다. 즉 로마 시민이 아닌 사람이 사형을 받으면 십자가형이건 돌로 죽을때까지 맞건 훨씬 고통스러운 죽음이었다)
머리를 잘라 은쟁반에 담아 가져다달라는 건 어떻게 봐도 소름끼치는 상황.
목을 베는 큰 칼이 이미 피가 묻은 상태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 뒤에 놓여 있고
손을 뒤로 결박당한 세례자 요한은 이미 핏기없이 창백한 얼굴.
요한의 몸 위에 덮인 붉은 빛의 천과 같은 색인 피가 목에서 뿜어나와 이미 말타의 창백한 모랫빛 바닥에 퍼져 스며들고 있고
미제리코르디아(자비)라고 부르는 숨통 끊는 단도를 허리춤에서 꺼내는 사형집행인의 팔과 등에 강렬한 빛이 가 닿는다.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나 가냘프면서도 쉽사리 안 끊이는 것인가 느끼게 돼 오싹하다.
그렇다
이 그림을 드디어 실물영접하는 것이다
오전엔 대성당 입장 줄이 너무 길어서 동네 구경하고 점심먹고 오후에 다시 오기로.
오후에 문 닫을 시간이 다가올수록 대성당 실내가 한가해져서
카라바조를 독차지하고 보는 호사를 누림
발레타 대성당에 카라바조의 작품이 하나 더 있는데,
제로니무스 성인.
카라바조는 몰타에서 잠깐 살 때도 꽤 중요한(그리고 고가의) 그림 주문을 여럿 받았던 것 같으나
여기서도 사고를 치고 쫓겨나는 신세가 됨.
그래서 시칠리아로 가는데.
카라바조 형님, 시칠리아에서 또 만나요.
제가 팬인건 아시죠?
*카라바조는 시칠리아에서 잠깐 머무는 동안 또 부지런히 그림 그리고 또 사고 치고 하다가 나폴리로 돌아가 로마로 복귀할 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포르토 에르콜레라는 항구 마을에서 열병으로 사망. 마흔 살도 되기 전이었음.
열병으로 죽긴 했으되 그 열은 무엇 때문이었는가? 매독? 화가들이 잘 걸리던 납중독? 식중독? 아니면 토마시노 가족의 복수?
20세기까지 포르토 에르콜레의 공동묘지에 묻혀 있다가, 2010년에 그의 유해를 발굴, 조사한 결과, 황색포도상구균에 의한 패혈증으로 사망한 것이라고.
2002년에 교황청이 공개한 서류에 카라바조의 죽음이 토마시노 가문의 복수인 것 같다는 문헌이 포함되어 있긴 했음.
가문의 누군가가 복수한다고 칼로 찔러서 카라바조가 패혈증 걸려 죽었다면 말 되는 스토리.
카라바조와 동시대인이었던 사람이 쓴 글에 따르면 그는 '미친 것 같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미켈란젤로 메리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몇백 년 지나 그림을 통해 알게 된 사람이니 이렇게 좋아하지,
근처에 있는 사람이었다면 가까이하기 어려웠을 사람임은 분명하다.
아무리 적게 봐도 분노조절장애는 있었던 것 같으니. (샥샥 피해나온 폭행 전과가 수없다)
성요한 대성당은 카라바조 작품 말고도
바닥 장식이 휘황한데
여러 색의 대리석을 써서 가문 문양과 비문을 박아넣은 것.
(대성당 바닥은 그냥 돌바닥이 아니다. 무덤이다)
한참을 사진 찍으며 구경했던 기억.
해골 문양과 가문 상징 문양들이 대부분인데
가문 상징 그림들이 워낙 다양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세례자 요한 참수 보고 나니 인생의 여러 리스트 중 하나를 해치운 기분.
3월 말고 4월이나 5월 혹은 9월 말 즈음에 2주일 정도 말타에서만 있다 가도 좋을 듯.
대성당 입장료 : 15유로
엄밀히 말하자면 여긴 대성당cathedral이 아니라 공동 대성당co-cathedral인데,
대성당의 역할을 다른 도시의 대성당과 나누어 하는 걸 뜻한다.
보통 한 도시에 대성당이 있다가 다른 도시가 더 중요해져서 그곳으로 대성당 역할이 옮겨가게 됐을 때 그 두 도시가 각각 co-catedral을 갖고 있게 되는 식.
발레타의 경우 음디나와 함께 공동대성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