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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술관 중독자 Apr 10. 2020

개조심

개조심 Cave Canem, 기원전 1세기 폼페이 모자이크, 67x67, 국립 고고학 박물관, 나폴리


그래, 또 개 얘기다. 사심이 가득한. 


#1. 나폴리에 갔던 게 벌써 십 년이 꽉 차게 넘었다. 다들 지저분하다고, 위험하다고 싫어하는 그 도시가 난 맘에 들었다. 근교의 예쁜 바닷가로 가기 위해 머무는 그곳에서 난 예쁘다는 곳 안 가고 며칠을 지냈다. 난 적당히 지저분하고 적당히 흐트러져 있는 도시가 맘에 든다. 


#2.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에서 만난 S사이즈 검둥개. 흰색, 검은색, 청회색, 빨간색의 심플한 색만 사용해 만든 이 개는 너무나 명료하면서 힘차 보여서 당장 어디선가 새라도 한 마리 사냥해 올 기세다. 근육질의 뒷다리, 날씬한 배, 기운차게 흔들리는 꼬리, 땅에 꽂힌 앞발에 삐죽 보이는 발톱. 이천 년 전의 모자이크 장인은 훌륭한 관찰력에다 단순한 선과 색으로 검둥개의 본질을 표현할 줄 아는 예술가였다. 세 뼘 조금 넘는 정사각형 액자에 들어가 있던 이 개의 원래 용도는 ‘개조심’. 폼페이의 주택 입구에 붙어 있던 경고판이었다. Cave Canem은 라틴어로 개조심이라는 의미다. 


#3. 오늘 이천 년 전의 개가 생각난 건 나의 개, 열 살이 넘었음이 분명하고 가는귀가 먹었으며 다리는 선천적으로 절뚝이는, 점잖은 포르투갈 포뎅고 잡종 연두 때문이다. 다른 개들보다 느리고 귀가 잘 안들리다보니 태평할 수 밖에 없는 개. 이 녀석이 오늘 사냥을 했다. 강가에 지나가던 계란보다 작은 생쥐를 잡은 것이다. (생쥐가 지구상에서 가장 개체 수가 많은 포유류라고 하는데, 내 눈엔 생각보다 자주 띄진 않으니 난 얼마나 못보고 놓치는 게 많은가) 

포뎅고 종이 사냥용 개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 개가 사냥 본능을 갖고 있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놔 줘, 했더니 입을 벌려 생쥐를 내려놓았고, 생쥐는 낑낑댔다. 고녀석, 얼마나 엄살이 심하던지. 제대로 살펴보진 않았지만 피가 나거나 다친 것 같진 않았다. 나이 많은 검둥개 제우스와 늘 산책하는 동네 할아버지께서 연두가 새라도 잡은 줄 알고 다가왔는데, 생쥐인 걸 알곤 그녀석을 옆 풀숲으로 밀어넣어줬다. 웃자란 잔디 속에서 생쥐는 잠시 낑낑거렸고, 잠시 뒤 그 소리는 조용해졌다. 어디로 숨었겠지. 생쥐 치곤 속도가 좀 느리던데, 다른 개들에게 안 잡히길 바랄 뿐이다. 


#4. 우리집 사냥개는 제일 좋은 의자에 몸을 둥글게 말고 숙면을 취하고 있다. 마구 달리고 사냥하는 꿈 꾸거라. 너의 본능을 알아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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