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수업을 들으러 강의실이 있는 건물에들어갔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4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가야 했다. 올라가다 보니 세무사 사무실도 있고 노무사 사무실도 있다. 내가 일했던 노무사 사무실이 있던 건물과 구성이 비슷했다. 심지어 엘리베이터가 없는 것마저도 같았다. 노무사 사무실에서 일할 때가 내가 노무사 수험 공부를 했던 마지막 시간이었다.
노무사 공부를 사부작사부작 오래 했다. 대학에서 배웠던 것을 고려해서 세상 사람들 보기 제일 그렇듯 한 직업은 노무사였다. 그래서 졸업 후 직장과 인강 위주의 공부를 하거나 일하지 않을 때는 인강과 학원을 오가며 항상 노무사 공부의 끈을 놓지는 않고 있었다.
계약직이나 아르바이트로 근무하면서 생활비와 수험 비용 정도만 충당할 정도의 많지 않은 돈을 벌면서 공부 시간을 계속 확보하며 수험 생활을 이어 나갔다. 마음 한구석에는 일정 기간 종일 공부만 해서 얼른 합격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지만 전업을 택하기에는 경제적인 면과 경력 면에서 어딘지 모르게 불안했다. 그래서 쉽게 전업 수험생의 길을 택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내적 갈등 속에서의 수험 생활 중 합격이란 결과는 생각보다 빨리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될 거라는 막연한 희망과 함께 합격 후 행복해질 모습을 상상하며 출퇴근 시간이 정확한 여러 업종의 사무직을 전전하다가 노무사 사무실에서도 일하게 되었다.
직위는 노무사가 아니라 그저 일반 사무직이었지만 내가 일하고 싶었던 곳이라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일해보니 내 예상과 달랐다. 조금 다른 정도가 아니라 내가 이런 걸 꿈이라고 꿨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근로자에게 가장 적은 돈을 줄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을 알려주고 돈을 버는 일이었다. 더불어 법도 사람이 만든 것이라 그런지 그렇게 완벽한 것이 아니었다. 특정 집단의 이기심이 보일 때도 있었고 법전에는 적혀 있지만 실제로는 적용되지 않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노무사 업무는 세무사와 행정사, 그리고 변호사 업무와 겹쳤다. 이 분야 저 분야에 뜯어 먹히는 부분이 많아서 수익을 창출해내는 영역이 많이 줄어든다. 더불어 영업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여자 노무사들은 한 달에 기본급 50만 원을 받아 갔다. 얼마 안 되는 내 월급보다 적은 돈을 받아서 갔고 점점 사무실에 나오지 않는 날이 많아지다가 아예 나오지 않는 일이 생기곤 했다.
자격증은 정말 최소 조건이었다. 그 이후의 현실은 생각보다 더 거친 것이었다. 대학교 때 최연소 노무사로 합격한 동기도 마찬가지였다. 그 동기가 공무원이 최고라며 공무원 준비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걸 전해 들었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희망했던 대학이 버스로 30분 거리도 되지 않는 곳에 있어도 문턱 한 번 밟으러 간 적이 없었다. 얼마 전에 그 대학 내 서점에서만 파는 책을 사러 그곳에 처음 가보았다. 막상 가보니 별 감흥이 없었다. 그저 비싼 등록금으로 쌓아 올렸을 커다란 건물이 참 좋아 보인다는 것 외에는 인상에 남는 것이 없었다. 그저 남들이 좋다고 하는 대학 중 하나일 뿐이었다.
대학뿐만 아니라 직업을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남들이 말하는 좋은 것이 나에게도 좋은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남들의 말들과 내 주변의 상황을 끼워서 맞추어 얼추 만든 추정 값을 내 꿈이라 믿었다. 후회가 안 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지나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글쓰기 수업이 끝나고 나와 보니 주변이 벌써 어둑하다. 집에 바로 들어가기에는 아쉬워서 영화를 한 편 보러 갔다. 배우의 꿈을 품은 십 대 소녀가 숱한시련을 겪으며 성장하는 영화였다. 왠지 이 영화 주인공의 얼굴이 어딘지 모르게 나랑 닮은 구석이 있었고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닮았다고 해서 내가 영화의 주인공인 것은 아니었다. 나는 스크린에 상영되고 있는 영화를 바라보고 있는 관객일 뿐이었다.
그랬다. 돌아보면 지금까지 나는 나만의 꿈을 이뤄나가면서 성장하는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저 남들의 말을 모아놓은 허상의 무언가를 나의 꿈인 줄 알고 착각하며 사는 관객이었다. 내가 보고 있는 그 실체 없는 영화의 주인공이 나이며 그 주인공이 품은 꿈이 내 꿈이라고 착각하며 살았다. 관객이면서 관객인지를 몰랐다.
영화는 이내 끝이 났고 스크린의 엔딩 크레디트를 뒤로하고 상영관을 터덜터덜 나왔다. 몇 달 전 고깃집에서 쉴 새 없이 서서 일해서 아팠던 발이 다시 아팠다. 아픈 발을 질질 끌며 힘없이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간다. 발에 통증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당분간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래도 발이 망가진 줄도 모르고 사는 것보다는 발에 문제가 있다는 걸 통증으로 알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기는 해도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닌 거라고 믿으며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