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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 Oct 27. 2022

결혼 공격

결혼 적령기 미혼 남녀에게 결혼을 강요하는 불편함 혹은 무례함

  엄마가 대뜸 할 말이 있다고 불렀다. 썩 그렇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엄마가 따로 부를 때는 듣기 좋은 말을 할 때보다 듣기 싫은 소리를 할 때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느낌은 왜 틀리지를 않는지. 엄마가 새로 일하게 된 곳에 등본을 낸 모양이다. 그러더니 담당자가 엄마에게 자식들 결혼시키라고 했다는 모양이다.      


  입사 시 필요하니까 등본 받는 거야 당연한데 남의 가족 결혼 여부까지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그들의 작태가 꼴불견이었다. 더불어 그 소리 들었다고 그 말을 그대로 옮기는 엄마도 미웠다. 엄마가 결혼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그저 불편한 일일 뿐이다. 불편함을 넘어 가히 공격당하는 느낌이다. 그렇게 나와 내 동생은 엄마에게 결혼 공격을 당해 버렸다.

      

  엄마는 내가 번듯한 직업을 갖기를 원했다. 그래서 수험이 길어져도 만나는 남자가 없어도 딱히 뭐라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험도 다 때려치우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지금 엄마는 어느 순간부터 잊을 만하면 결혼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몇 달 전에는 선을 보라며 대뜸 듣도 보도 못한 남자를 들이밀기도 했다. 

  

  결혼을 위한 만남은 싫다. 그런 식으로 결혼하려고 했으면 벌써 했을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대놓고 남아선호 사상이 팽배했었고 여아를 임신했다는 이유로 중절 수술을 선택하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학창 시절 교실에는 언제나 남학생이 더 많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남성 대비 여성이 숫자로 따져보면 텅 비는 구간이 생겨버렸고 그렇게 결혼 적령기 여성이 어느 순간 금값이 되었다. 돌아보면 그간 수없는 며느리 공격과 올케 공격을 당했다. 여기서 며느리 공격은 ‘우리 아들이랑 결혼해주지 않겠니? 내 며느리가 되어달란 말이다.’ 정도로 풀이할 수 있겠다. 올케 공격도 마찬가지다. 요즘 며느리 공격과 올케 공격이 뜸하더니 엄마가 결혼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결혼하지 않고 있는 이유가 꿈 많은 십 대 소녀처럼 운명의 남자를 기다리고 있다거나 그런 거 아니다. 운명의 남자라고 해봤자 엄마에게는 그 운명의 남자 아빠일 것이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그저 곁에서 연애 혹은 결혼이란 이름의 관계를 형성함에 따라 함께 인생을 공유하는 사람이 대개 서로의 운명일 것이다.      


  거대한 의미 같은 것을 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싶고 그러다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 여건이 나쁘지 않으면 결혼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비혼 주의까지는 아니고 결혼은 내게 미래에 일어날 수 있을 가능성이 조금 있는 일 일 따름이다. 그 가능성 점점 줄어들고 있는 거 같긴 하다만 말이다.      


  없이 살면 없이 살았지, 짝 맞추기식 만남 더는 하고 싶지 않다. 소개팅이나 선은 각각 연애 시장과 결혼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는 일이다. ‘내가 연애 좀 해 보겠다.’ 또는 ‘내가 결혼 좀 해보겠다.’ 이거 아닌가. 그리고 주어진 시간에 서로의 매력을 언어적, 비언어적 방법을 총동원해 프레젠테이션 한다. 그 프레젠테이션의 성공 여부는 다음 만남의 성사 혹은 관계 설정이다.     


  연애나 결혼이 주된 목적이어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향한 내 심장의 역동성 앞에 내 자유의지 따위는 무력해지는 그런 사람을 만나서 사랑하고 싶다. 그 사랑의 진행 과정 중 나올 수 있는 모습이 연애나 결혼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나이 들어서 무슨 헛소리냐, 시집이나 가라’라는 반응은 사양하겠다.    

  나는 비혼 주의자가 아니지만, 동생은 비혼 주의자다. 동생 또한 결혼 공격에 질려버린 지 오래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동생은 집 밖에서 결혼 공격을 당하면 결혼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으면서 돌싱이라고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제가 결혼에 상처가 있어서… 그래서 아직 결혼은…” 이렇게 연기를 하면 결혼 공격에 열을 올리던 사람들이 대개 미안한 표정을 만면에 담으며 조용해진다고 한다.


  이 무슨 촌극이란 말인가. 많은 사람들이 가끔 아니 지나치게 남의 인생에 관여하는 경향이 있다. 꼭 필요한 소리도 들어서 좋은 소리도 아니면 입을 좀 다물어줬으면 좋겠는데 그 정도의 배려를 바라는 건 너무 무리인 걸까.


이미지 출처_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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