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리 Oct 21. 2023

이상하게 재밌다

같은 작가 다른 평가

  “제가 뭐라고 할 거 같나요?”     


  “글쎄요, 원고 다시 쓰세요?”     


 * * *      


 나는 요즘 줌으로 웹소설 과정을 온라인으로 듣고 있다. 로맨스 판타지 원고를 작성 중이다. 한 달 전 시놉시스라고 하는 걸 태어나서 처음 써봤는데 네 줄인가? 빼고 피드백해주시는 작가님이 다 썰어버리셨다. 신명 나게 칼질을 하시다가 ‘똥차는 끌어당기고 벤츠는 밀어내는 저주’에서 급발진하셨던 기억이 난다.       


  “똥차...!”      


 외마디 한 마디가 입에서 새어 나오는 동시에 머리끝까지 화가 난 모습이었다. 흡사 뚜껑이 열렸다고 하는 건 이런 것을 말하는 거겠지. 기간에 쫓겨 딱히 그럴듯한 저주가 생각이 나지는 않고 웃자고 적당히 만들어낸 저주였는데 저렇게까지 화가 나실 줄은 몰랐다. 그래도 진심은 통하는지 남주의 마음에 부응하고 싶어 남주가 준 저주를 푸는 아이템을 쓰지 않고 버티는 여주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에서는 연민어린 표정을 지으셨다. 그래, 그건 살려줘야지. 나 그거 쓰다가 혼자 감동 받았는데 말이다. 그렇게 살아남은 네 줄이었다.      


 웹소를 아직 모르긴 하지만 순간 갈 길이 멀어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일말의 가능성조차도 희박해보였다. 그래서 시놉시스가 끝인 기본반 다음 과정으로 원고 작성을 하게 되는 심화반을 듣지 않으려고 했다. 그냥 실업급여 기간도 끝나가고 해서 취업하려고 했다. 그렇게 웹소의 세계와는 영영 멀어지려고 다짐했다.      


 하지만 의외의 말을 듣게 된다. 그렇게 원고를 칼질하셔놓고 내 기준에서는 내가 가장 최악인 듯했지만 다른 분들도 신명 나게 칼질하셔놓고 자신이 오늘 심사한 시놉시스 중에 원고로 진행 못할 시놉시스는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피드백 하다가 중간에 화내서 미안하다고 사과도 하셨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인지. 그럼, 들어도 되는 건가? 고민이 되었다.     


 거기다 현재 진행되는 커리큘럼이 마지막이라고 해서 나중에는 듣고 싶어도 더 못 듣는다는 생각에 듣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 뭐, 한 달 정도는 더 고생해도 되겠지 하는 마음에 듣게 되었다. 실업급여 받는 기간 동안 구직활동을 하도록 하게 되어 있는데 많이 지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딱히 연락 오는 데도 없고 말이다. 수업에 있어 열정도 뭣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주워듣는 것이 있으면 나중에 어떤 글을 쓰든 도움이 되겠지 뭐 이 정도의 마음으로 되게 무심하게 다음 과정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그러다 심화반에서는 조별 과제란 것을 하게 되었고 브레인스토밍 기법을 이용해 네 명이 머리를 맞대고 시놉시스를 함께 작성하게 됐다. 그래도 웹소를 좀 아는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니 제법 근사한 시놉시스가 나왔다. 나는 조별활동할 때 내가 제일 쳐질 줄 알았는데 집단지성의 힘인지 함께 있으니 아이디어가 막 샘솟았다. 덕분에 딱히 구멍은 아니었던 거 같았다. 함께 하는 시간이 매우 즐거웠다.     


 나만 즐거웠던 것은 아닌지 다른 분들이 담당 작가님께 한 작품을 넷이서 같이 원고를 써도 되냐고 물었다. 그 작가님은 권하지 않으셨다. 남동생과도 써봤는데 썩 그렇게 좋지 않았다고. 가족이어서 그나마 붙어있는 것이지, 가족이 아니면 힘들거라며 만류하셨다. 작가님의 남동생도 웹소설 작가이며 내 시놉시스를 신명나게 칼질하신 그 분이었다.      


 원고를 같이 쓰지는 못하더라도 모두 마지막을 아쉬워했다. 그렇게 단톡방을 만들게 되었고 그 방은 조별 활동이 끝난 지금도 활발하다. 같이 얘기하면 너무 재밌는데 문제는 그분들이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몰라서 검색을 자주해야 한단 것이다. 그랜절(큰절), 벨(비엘=Boy's Love) 그분들이 숨 쉬듯이 말할 수 있는 단어가 나에게는 암호나 다름 없었다. 그것 빼고는 그럭저럭 재밌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다른 분들이 다들 원고를 내셨다. 사실 시놉에서 제대로 썰린 후 원고 쓸 생각이 거의 없어졌었다. 그냥 수업만 들을려고 했는데 그래도 다른 분들은 몇 작품씩 만들어서 피드백을 받으시는데 함께 하는 마당에 원고 쓰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꼴랑 1화짜리 원고를 냈다. 크게 기대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피하고 싶었는데 인생은 피하려고 하면 더 피할 수 없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시놉시스를 피드백한 작가님께 원고를 또 피드백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원고 다시 쓰라는 말이 나올 줄 알았다. 나는 작가님이 자신이 뭐라고할 거 같냐는 질문에 원고 다시 쓰라고 할 거 같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의외의 말이 나왔다.     


“이상하게 재밌어요.”     


“네?”     


“문장이 엉성한데 묘하게 재밌어요.”     


 전혀 뜻하지 않은 반응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이상하게 재밌다라, 뭐...뭐지?     


“행동이나 심리묘사가 좀 없지만 캐릭터성이 살아서 괜찮아요. 흡입력이 있어요. 시놉시스만 보면 사실 몰라요. 원고를 봐야 알 수 있어요. 1화만 보면 아주 괜찮아요.”     


 뭔 소리를 하는 건지 들어도 잘 모르겠다. 여튼 괜찮다 이거지? 단톡방에서도 다른 분들게 해당 원고를 풀어보니 반응이 좋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저번 달 언제쯤만 해도 역시 나는 에세이가 찰떡이라며 웹소설 근처에도 가지 않고 곱게 에세이 다시 쓰러 가려고 했는데. 같은 사람에게서도 이렇게 다른 평을 받을 수 있다니. 세상은 일희일비할 일투성이지만 일희일비할 필요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작가님은 5화까지 좀 더 써보기를 권하셨다. 1화도 안 쓰려고 했던 내가 지금 다음 원고도 쓰고 있다. 세상은 참 재밌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이전 06화 내 이름은 우레가 아닌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