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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 Oct 21. 2023

내 이름은 우레가 아닌데

외국인도 잘 못 알아듣는 내 이름

  케이팝 기사 작업 주는 외쿡인 사장님이 생일을 축하해 주셨다. 외국인이 내 생일 축하해 준 건 처음이다. 게다가 사장이. 축하도 축하지만 단톡방에 공지로 걸어놓으셨다. 와, 살다 살다 이런 일도 있구나. 한국인 사장들은 축하한다 소리도 잘 안 해주는데. 외쿡인 인심(?) 좋다.     


 얼굴도 안 보고 아바타만 보고 메타버스에서 면접을 봤었는데 인스타를 보니 이 분 본업은 성우인 모양이다. 어쩐지, 영어가 잘 들리더라. 영어여도 미국이 아니거나 악센트가 강하게 들어가기만 해도 듣기 까다로워질 때가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영어수업을 따로 제공해 준다는 말도 거짓이 아니었다. 메타버스에서 영어수업도 하고 있었다. 움, 요즘은 N잡러가 대세인가.

       

 그런데 제 이름은 안우‘례’라니까요. 입금도 안우‘레’로 작성해서 보냈다. 환율 때문인지 대행업체를 통해서 입금이 되었고 그마저도 바로 안 되었다. 이름에 오타가 나서 입금이 안 될까 봐 걱정했는데 그 정도 오타가 있다고 입금이 안 되지는 않았다. 영문명도 있고 말이다. 영문명은 U Rye를 쓴다. 처음에는 알파벳만 보고 사장이 내 이름을 ‘안뉴리’라고 불렀다. 듣기 좋길래 ‘오, 괜찮은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고 안유리가 될 생각은 없지만.     


 내 이름은 마지막 글자 ‘례’는 이중모음이라 발음하기도 힘들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인지구조에 내 이름 같은 게 없다. 여러 번 거듭 설명해야 한다. 어디 가입을 하거나 이름을 말해서 무언가를 확인해야 할 때 매우 고생을 한다. 사람들이 잘 못 알아듣는다 그래도 병원 같은 데 가면 왠지 이름으로 친구 먹을 수 있을 거 같은 이름들이 꽤 눈에 띈다. 일례, 점례, 순례... 그럼에도 우례는 왠지 이름으로서 잘 인식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중학교 때 친구 엄마 중 한 분은 “그게 이름이야?” 이러셨다. 거참, 제 이름인데요. 이름입니다.     


 독특하긴 한데 누군가에게 이름을 말할 때 위에 언급한 일련의 과정이 반복되는 일이 많아서 좀 번거롭고 불편하다. 그래서 케이팝 기사 단톡방에서는 ‘Maria’라고 불러 달라고 했다. 원래 내 영어 이름은 Alice인데 그냥 왠지 다른 이름도 해보고 싶었다. 흔한 이름에 대한 남들이 갖고 있지 않은 로망이 있다. 양산형 이름이 갖는 익명성 비슷한 것에 숨을 수도 있을 것만 같고 나는 나쁘지 않다. 그리고 언어가 주는 영향을 무시하지 못하지 않는가. 계속 마리아라고 불리면 성모님 비슷하게 자애로워질지도 모를 일이다.     

 

 영어이름을 바꾼 건 8월 언저리였는데 그때 영어 이름을 바꾸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신문기사에 언급된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 이름이 에리스였다. 괜히 비슷하게 들리면 찝찝한데 잘 됐다. 앨리스란 이름은 어렸을 적 허세로 클로저에 나오는 나탈리 포트만의 극 중 이름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허구를 기반으로 한 영화 속에서조차 철저히 허구인 인물이었다. 영화는 꽤 염세적으로 사랑을 다룬다. 그런 걸 원하지도 않는데 사실. 다른 이름을 사용해서 다른 삶을 살았다는 게 묘하게 마음을 동하게 하는 게 있었을까.

       

 마리아는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라 거북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나는 잘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말인데 내 한국 이름도 좀 다르게 불러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필명으로서 말이다. 적잖은 시간 동안 내 이름을 음절 단위로 설명해야 하는 삶에 피로함을 느낀다. 설명하는 피로함은 차치하고서라도 독자들에게 이름부터 난해하게 하고 싶지는 않은데. 아직 있지도 않은 독자 걱정을 하는 내가 조금 어이없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케이팝 기사는 지금 두 달째 일을 안 주고 있다. 한 번은 기껏 시간을 들여 작성했는데 그 기사는 업로드되지 않았다. 그래서 잘린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닌 모양이다. 그래서 저번에 작성한 거 업로드 여부를 떠나 돈 달라고 했다. 말하고 바로도 못 받고 한 일주일 있다가 받은 거 같다. 외노자라는 건 힘들구나. 말도 잘 안 통하고 돈도 달라고 달라고 해야 하고. 생일 축하고 뭐고 돈 벌려고 하는 짓인데 돈이 예측 가능하게 들어와야지. 사장님 나빠요. 외국인 인심 좋다는 말 취소.     


 그래도 11월, 12월에는 일을 좀 줄 모양이다. 진작 좀 이렇게 하지. 에스파와 트와이스 스케줄이 있을 때 내 이름이 기사 일정표에 적혀 있었다. 내가 선호하는 케이팝 아티스트를 1순위부터 5순위까지 죄다 걸그룹으로만 적었기에 이런 일이 생겼기도 한데 사실 나는 남돌 크게 관심 없다. 나랑 같은 포지션, 같은 일을 하시는 분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분도 여성분인데 전부 걸그룹만 적으셨다.


 어렸을 때도 남돌 별로 안 좋아했다. 그때도 남돌보다는 여돌을 좋아했지. 지금만큼은 아니었어도 말이다. 나는 어렸을 적 허세 2로 인디밴드를 좋아했었다. 그런 내가 지금 케이팝 기사를 간헐적으로나마 쓰고 있다니. 세상일은 참 알 수가 없다.  

    

 일정표 확인할 때 Maria로만 확인을 해서 몰랐는데 맨 위에 한국어 이름을 보니 여전히 안우레라고 적혀 있다. 뭐 저렇게 적어도 입금에 상관도 없는데 맘대로 부르라지. 그래, 이름도 맘대로 부르고 일도 맘대로 줘라. 반쯤 없는 셈 칠 테니까.


 녹록지 않은 삶에 개명욕구까지 들지는 않고 필명이나 좀 잘 짓고 싶다. 이름이 쉽게 불리면 삶도 수월하게 풀리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나름 내 본명에 대한 애착도 있고 말이다. 두 손 두 발 다 놓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나름 여러모로 애쓰고 있으니 좀 좋은 날도 왔으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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