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한글 파일만 쓰다가 케이팝 기사를 워드 파일로 작성하래서 작성하려고 결제를 하려는데 해외 원화 결제가 안 됐다. 고객센터에 문의를 해보니 은행에 가서 풀어야 한다고 했다. 지금도 필요하고 나중에 해외직구로 돌도 사고해야 해서 꼭 가야 했다.
카드 재발급의 무게려니 하며 땡볕을 걷고 있는데 걸려온 웹소설 국비지원 담당자의 전화였다. 오늘이 웹소설 수업 개강일이구나. 어떻게 이런 걸 잊어버릴 수 있는지. 공휴일 이틀 뒤 여파로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건지, 오전 9시에 폭염문자가 안 오면 오히려 허전할 정도로 유독 더운 올해 여름 날씨 때문인 건지. 부주의한 주제에 괜히 변명거리를 찾으며 집으로 뛰어갔다.
그나저나 국비지원을 듣게 되다니. 얼마 전 포토샵 기초과정을 퇴직 전에 만들어 놓았던 내일배움카드로 배우려고 컴퓨터 학원에 상담을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학원 측은 포토샵 기초과정은 겉핧기라며 웹디자이너 국비지원과정을 권유했고 혹할 뻔했다. 그저 매듭 액세서리로 스마트 스토어 차릴 때 도움이 될까 해서 조금 배워두려는 것이었다. 간단한 배경정리랑 색상 보정 정도는 해야 될 거 같아서 들으려 했던 건데 필요한 것보다 너무 많이 배울 필요는 없었다. 세상살이는 꼭 필요한 거 배우기에도 시간이 그리 여여한 것이 아니어서 말이다.
하지만 학원에서 추천한 과정은 5개월 동안 일일 8시간 주 5일 수업만 들어야 했고 코딩에 홈페이지 제작까지 배웠다. 그리고 따로 연습도 해야 되는 모양인데 정말 업으로 하지 않는 한 국비지원은 투머치였다. 그것만 해야 했다. 그냥 없는 게 없는 유튜브에서 포토샵 기초 강의를 듣기로 했다. 찾아보니 줌으로 들을 수 있는 내일 배움 카드 과정도 제법 있었다.
예전에 재직자환급과정으로 귀금속 공예를 배운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직접 만든 반지를 선물 받고 싶었는데 딱히 선물해 줄 사람도 만들어 줬으면 하는 사람도 없었는데 반지는 좀 갖고 싶고 해서 ‘그냥 내가 만들고 말지.’ 하며 귀금속 공예 수업을 들었었다.
마치 대장장이가 된 거처럼 몸은 좀 고됐지만 재미있었다. 외근을 마치고 지하철에서 만난 친구 남편이 "너 사는 거 재밌니?" 하고 묻길래 재밌다고 나 요즘 이거 배운다며 처음 만든 반지를 보여준 적이 있었다. 무미건조하고 돈 버는 거 빼고는 낙이 없는 직장 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행복 비타민이었달까.
수강이 끝날 무렵 다니던 회사에서 퇴직을 했고 그때 마침 국비지원으로 귀금속 공예를 6개월 동안 일일 8시간 주 5일 동안 가르쳐주는 과정이 개강을 했는데 실업자 대상이라 그냥 들으면 됐는데 고민을 좀 하다가 그냥 이직을 하기로 하고 이직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재직자 과정이나 또 들으러 올 생각으로 그곳을 떠났는데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공시생이 그것도 장수생이 될 줄은 그때는 꿈에도 몰랐었기에.
국비지원과정은 기본 6개월 안팎인 줄 알았는데 짧은 것도 있다. 지금 듣는 것이 그렇다. 국비지원도 종류가 다양한 거 같다. 일단 기본반은 9일인 데다 그 기간이 또 아직은 실업급여를 받는 기간이라 아직은 부담이 없다. ‘잘 맞으면 듣고 아님 마는 거지.’ 하는 마음으로 듣게 되었다. 첫날 30분 지각이 무색하게 나름 잘 적응해서 지금까지 듣고 있다. 심화반 강의는 대체로 몇 달의 텀이 있는데 이번 과정은 심화반 수업이 다음 달에 바로 열린다고 한다.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고민이 생겼다. 이 과정은 고용보험이 가입되어 있으면 들을 수 없다. 이제 곧 실업급여가 끝나서 일을 해야 하는데 취업시기에 물음표가 떴다. 물론 과제량을 봐서는 병행 자체가 좀 힘들 거 같기도 하다. 수업 때마다 리뷰 과제가 있고 며칠 후에는 시놉시스도 내야 한다. 한두 달 궁핍하게 살고 데뷔를 앞당기는 것과 소득의 텀 없이 취업하는 것 사이를 고민했다. 그러다 뜻밖의 열쇠를 과거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귀금속 공예 배워뒀으면 언제든 조물딱 거릴 수 있는 취미 하나 더 늘렸을 것이고 꼭 취업 안 하고 창업을 했어도 될 일이었다.일 년 가까이 공부를 넘어 거의 훈련을 했던 영어청취와 영어회화도 학원이 아무리 엿 같아도 그냥 나는 나대로 공부했으면 지금보다 영어 더 잘했을 것이다. 디스크 재활운동으로 했던 척추교정운동. 강사가 다른 센터 강사냐고 물어볼 정도로 잘했던 그 운동. 그때 자격증 따놨으면 주민센터에서 지금 강사라도 했을 것이다. 지금은 자격증 과정 열자마자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수강료도 세 배 가까이 올랐다. 내가 수험이라는 동굴 속에 처박혀 있을 동안 말이다.
과거가 말한다. 그냥 한 두 달 고생을 더 하라고 말이다. 고용보험 들어가면 안 되니까 작년에 일하던 식당을 찾아가 볼까. 일용직도 하루단위로 고용보험이 들어가니 어디 가서 단발성으로 일하는 것도 애매하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니면 안 벌고 안 써 볼까. 일단 지금 진행 중인 수업은 들어야 되겠지. 고민하다가 평소의 내가 웬만해서는 잘 선택하지 않았던 방법이 떠올랐다. 사업자를 내는 것이었다.
그래, 자영업을 하자. 쟁여놨던 예쁜 돌 눈물을 머금고 이쁘게 옷 입혀서 파는 거다. 그리고 국비 과정은 심화반까지 모두 마쳐보는 거다. 그리고 웹소설 작가 되면 네이버에 필명 검색하면 나오더라. 따로 웹소설가가 아닌 그냥 소설가로 말이다. 수업 때 설명해 주는 것을 들어보니 기본반은 시놉시스를 전체 피드백을 해주고 심화반은 원고를 일대일 피드백을 해준다고 한다. 더 망설일 필요는 없는 거 같다.
강의가 공짜라고 좋아했더니 고용보험 미적용자 대상자라 생활비 버는 일이 꽝꽝 막혀버렸다. 하지만 이것은 오로지 생활비만 목적인 취업은 이제 멈추라는 신호인지도 모르다. 모르지, 스마트 스토어 잘 돼서 더 이상 취업 안 해도 될지. 그랬으면 좋겠다만 세상일에는 언제나 변수가 있었기에 장담을 할 수 없다. 지금은 그저 이 난관을 뚫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이것저것 해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