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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 Jul 01. 2023

나는 나에게 소속되기로 했다

세상의 말을 조금 무시한 채 내 길을 찾는 여정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집에서 제일 가까운 고용센터로 갔다. 오후 4시쯤  지하철을 타러 집을 나섰다. 집에서 지하철로 15분 남짓이면 도착한다. 걷는 시간을 합쳐도 삼십 분 안쪽이다. 굳이 4시에 가는 이유는 사람 많고 복잡한 그곳이 그 이후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옥 같은 내 첫 직장인 고용센터에 세 번째 실업급여를 받으러 갔다. 고용센터에 지하철로 이동하는 15분이 예전에 출퇴근했을 때보다 길게 느껴졌다.


  폐업 신고를 하자마자 실업급여에 필요한 이직확인서를 접수해 주기로 한 세무사 사무실은 며칠 전까지 서류를 작성조차도 안 해 놓았었다. 그 덕분에 은근히 신경을 써버렸다. 생각해 보니 노동행정과 관련된 업장이 아닌 곳에서 이직확인서를 받은 건 처음이었고 폐업까지 한 마당에 적법한 서류를 받아내기란 의외로 고된 일이었다. 맘 같아서는 그냥 내가 작성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회사 측 작성과 신고가 원칙인 데다 귀찮기까지 해서 내버려 두었더니 이모양이 되었다.


  작성한 서류의 내용을 원장님을 통해 받아 보니 세무사 사무실에서 근무 일수 계산을 약간 잘못했다. 상관없다. 조금 틀리게 적어서 접수해도 공무원들이 이 정도는 알아서 수정해 주니까. 힘겹게 서류를 받아내고 나서야 고용센터에 일했을 때 방문한 민원인들이 왜 그렇게 신경질적이었는지 조금 이해가 가기도 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일망정 생계를 유지하던 곳이 사라지니 왠지 위축되는 기분도 들었다. 몸도 마음도 평소보다 힘이 없었지만 돈 받겠다는 일념으로 지하철에서 내려 고용센터로 향한다.


  도착해서 인포에 있는 층별 안내를 보니 내가 일했던 곳이 없어졌다. 나는 고용보험 자격관리팀에서 일했었는데 내가 일할 때도 근로복지공단에 흡수된다는 말이 있었는데 역시나 흡수가 되었나 보다. 내가 일했던 곳은 없어졌지만, 그것과 별개로 지금의 완연한 급부행정을 수행하는 모습, 취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지원과 보조 등의 혜택을 주는 행정기관의 모습이 나쁘지 않아 보였다. 세상은 이렇게 변해버렸는데 나만 또 이렇게 실업급여를 받으러 왔다.


  실업급여를 담당하는 2층에 올라가니 역시나 이 시간에는 사람이 없다. 담당 공무원은 형식적인 질문을 몇 가지 하더니 신청서를 작성하라고 했다. 별다른 말이 없는 걸 보니 실업급여에 필요한 서류가 다 들어와 있나 보다. 사람이 어찌나 많이 오가는지 비치해 놓은 펜 중에 제대로 나오는 게 없다. 별다른 저항감 없이 가방에 들어있는 펜을 꺼내 신청서를 적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학교에서는 취업 안 할 거면 당장 학과 사무실로 와서 아르바이트를 하라고 했다. 경력단절이 있으면 안 된다는 이유였는데 학교에 다시 가긴 싫고 나는 구직을 하기로 했다. 그때 당시 했던 노무사 공부에 도움이 될 것 같고, 단순계약직이라 야근 안 해도 된다는 이유로 지원했던 기억이 난다.


  첫 출근 날 엄마는 그 민원인 득실득실한 곳에서 몇 푼이나 벌겠다고 일하냐며 공부나 하라고 다시 생각하라며 대문 앞까지 나와서 계속 잔소리를 했다. 엄마 말을 듣지 않은 대가였는지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소주병을 깨고 고함을 질러대는 민원인들을 상대로 주먹구구식으로 폭탄을 막는 총알받이 신세가 되었다.


  민원인도 민원인이지만 민원전화가 해도 해도 너무 많이 왔다. 계약기간 동안 사기업 면접을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포스코는 희한하게 면접 전에 신체검사를 했다. 청력검사를 처음에 했을 때는 정상 판정이 안 나왔다. 검사하던 분이 놀라서 "정상 안 나오면 안 돼요!"라고 말하며 4~5번 정도 검사를 하고 나서야 간신이 정상이 나왔다. 그 정도로 귀가 많이 안 좋았었다. 그만두고 몇 달 후 괜찮아졌지만, 계약기간 말에는 귀가 평소보다 잘 안 들리고 고막이 종종 아팠다. 노동부에서 산재라니.


  궁둥이가 무거운 나지만 아픈 데는 장사가 없었다. 어떻게든 일하는 시간을 줄이려고 있는 연차 없는 연차 다 끌어다 썼고 근무 시간에는 몰래 나가서 떡볶이를 사 먹고는 했다. 그때는 계약기간 만료까지 버티자란 생각뿐이었다. 떡볶이를 주로 사 먹었던 곳은 일하던 곳 근처에서 꽤 유명한 떡볶이 노점상으로 바싹 튀긴 김말이에 떡볶이 국물을 찍어서 입에 넣는 순간 그날의 고됨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거 같았다. 그 떡볶이 노점상 정말 맛있었는데.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신청서를 썼고 다 작성한 후 담당 공무원에게 제출했다.  


  건물 밖을 빠져나와 주변 번화가를 두리번거렸다. 내가 좋아하던 냉면집을 지나가는데 오늘은 쉬는 날이라고 한다. 바로 옆에 좋아하던 생선구이집이 원래 있던 자리에 더하여 2호를 내서 자리하고 있었으나 왠지 생선구이는 딱히 당기지가 않는다.


  그러다 그냥 집으로 가려고 지하철역으로 갔다. 지하철역에 가는 도중 노점상을 쭉 둘러보니 내가 고용센터에서 일했을 때의 1/3밖에 안 되는 거 같다. 2/3만큼의 자리가 왠지 허전하게 느껴졌다. 이곳보다 더 좋은 곳으로 간 거였으면 좋겠다. 그렇게 길을 걷던 중 어딘지 모르게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혹시나 내가 자주 가곤 했던 그 노점상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 떡볶이 + 튀김 세트를 시켜 보았다.


  입에 넣는 순간 설명은 필요 없었다. 내가 알던 그 맛이었다. 나는 그 맛을 기억하고 있었고 그 노점상은 고유의 맛을 잃지 않고 있었다. 냉면집도, 생선구이집도, 그리고 이 떡볶이 노점상도 강산이 변했음에도 자신의 자리를 변함없이 지키고 있었다.


  그렇다. 어쭙잖은 소속감에 기대어 안정감을 누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기댈 것은 남들 보기에 좋아 보일 수 있는 조직 생활 같은 것이 아니었다. 강산이 변하여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 있는 나만의 무기가 필요하다. 내 힘, 내 실력이란 무기 말이다. 그렇게 나는 나에게 소속되기로 했다. 지금은 나의 무기를 갈고닦을 시간이다. 실업자에 백수여도 괜찮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시간을 벌었다. 이제 움직이자. 멋지게 갈고닦은 나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


이미지 출처_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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