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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 Oct 21. 2023

웹소설을 쓰려고 합니다

에세이 초고 작성을 마무리할 즈음에

  지난여름 후 서늘하고 춥고 따뜻한 계절을 거쳐 올해 다시 찾아온 여름. 이 무더운 날씨는 맞이할 때마다 반갑지 않다. 더불어 실상 큰 수고가 드는 것은 아니지만 에어컨 청소는 번번이 귀찮은 일이다. 선풍기로 버티고 버티다 선풍기로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에어컨 필터 세정 스프레이를 사러 마트로 향한다.


 스프레이를 사고 난 후 집에 돌아와서 핸드폰을 보니 엄마가 카톡으로 친구초대 무료쿠폰을 보냈다. 엄마가 주로 이용하는 미디어는 세 가지다. 신문, 웹툰, 그리고 로맨스 웹소설. 환갑이 넘은 엄마는 여전히 로맨스 웹소설을 본다. 책과 음반만큼은 용돈 외로 얼마든지 사서 보게 했던 지난날의 엄마. 방점을 찍을 부분은 만화책도 아낌없이 사줬단 것이다. 어찌 보면 엄마는 나이가 무색하게 여전히 열린 사람이지만 어찌 보면 좀 측은하기도 하다. 괜히 안방에 드러누워 있는 아빠가 미웠다. 아빠가 사랑꾼이었으면 엄마가 지금 로맨스 웹소설이나 보고 있을까 싶어서 그랬다.


 초고가 완성이 거의 다 되어가고 있다. 글 쓰겠다고 까분 지 일 년이 조금 넘었다. 일기나 보고서 같은 거나 써 봤지, 독자가 있는 글을 써 본 적이 없어서 꽤 헛발질을 했다. 분명 글을 쓰겠다고 하기 전에는 잘 쓴다는 말만 들은 거 같은데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니 내가 그간 듣던 말은 환청이었나 싶을 정도였다. 독자가 있는 글과 숙제 혹은 일할 때 쓰는 글은 달랐으며, 글을 읽는 것과 쓰는 것 또한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날도 오는구나. 지금 쓰는 이 글을 다 쓰고 세 꼭지마저 더 쓰면 초고가 완성된다.


 퇴고에 전력을 다하는 것도 방법이겠으나 수험을 마친 후 잠시 주춤했다가 거의 평생을 함께 해온 안 놀아 병이 또 발동했다. 남는 건 시간밖에 없는 백수이기까지 한데 차기 행보를 정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작년에 쓰고 싶었던 핑크핑크한 글은 올해도 여전히 쓸 수가 없다. 하지만 칙칙한 삶 속에서도 핑크핑크한 글을 쓰는 방법이 있었으니 그것은 허구를 빌리는 것이었다.


 작년에 에세이를 쓰던 중 허구가 아닌 글을 쓴다는 부담감에 잠시 소설을 썼던 적이 있다. 그때 쓴 단편소설이 2편 있다. 합평 형식의 클래스에서 쓴 글이었고 클래스 담당 작가님께서 이 소재는 장편으로 써야 하고 쓰려면 실력을 좀 더 키워야 한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에세이를 쓰는 것만도 내게는 쉬운 일이 아니라 소설을 따로 쓰거나 공부하는 시간을 따로 낼 여유는 없었다. 그래서 장편소설용 소재를 웹소설로 풀어볼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장르는 로맨스 판타지로 정했다. 로맨스 판타지를 염두하고 쓴 글은 아니었지만 읽은 사람들이 판타지냐고 물어서 그냥 작정하고 판타지로 쓰기로 했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단순하다.


 매듭 수업을 하던 중 여느 때와 같이 강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웹소설을 쓰기로 한 마음속 다짐을 고백했다. 그랬더니 강사님이 대뜸 “19금 잘 써요?”라고 물었다. 19금은 내 계획에 없던 것인데. 현재 19금과 굉장히 먼 삶을 살고 있어서 괜히 쓰다가 현타가 올 거 같았다. 그리고 가까운 삶을 살게 된다고 해도 굳이 써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참여하는 글쓰기 모임 중 한 곳에서 웹소설을 가끔이라도 보는 분들께 질문을 했다. 19금을 꼭 써야 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의견을 모아보자면 S급에서 A급 웹소설에는 크게 필요한 부분이 아닌 거 같았다. 소설도 잘 안 보지만 웹소설은 더 안 봐서 몰랐는데 꽤 레드오션인 듯하다. 하지만 레드오션 따위에 굴하지 않기로 했다. 더 한 레드오션인 걸그룹판에서 에스파도 르세라핌도 다 잘 나가고 있다. 내가 살아남을 사람이면 살아남겠지. 망해도 장편소설용 트리트먼트로는 손색이 없을 것이다. 쓰는 동안 작법 공부도 할 것이고. 아무리 봐도 손해가 없다.


 머릿속 생각일 뿐이지만 혼자 흐뭇해하다가 이번 주부터 시작하는 에세이 챌린지에 글을 작성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글을 올렸다. 몇 번이나 다시 본 글임에도 어설픈 데가 여전히 보였다. 그렇게 글을 올리다가 문득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이 나를 작가님이라고 부르고 나 또한 다른 분들께 너무나 자연스럽게 작가님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분명 작년만 해도 누가 작가님이라고 부르면 부끄러워서 몸 둘 바를 모르고 내 입으로 차마 부르지 못했던 단어였는데 말이다.


시도에 앞서 맨날 무언가를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수험뿐만 아니라 에세이를 쓰고 출간을 준비하는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망설이며 ‘나는 아직 부족해’를 되뇌며 자격을 갖추기 위해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시작을 쭉쭉 미뤄만 왔다. 결과를 떠나서 일단 당장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별로 미루고 싶지도, 기다리고 싶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트북에서 작년에 썼던 단편소설 파일을 열어본다. 이것은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1/4에 해당한다. 궁극적으로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여기에 내가 생각하고 체험한 사랑을 허구라는 빌미로 녹여낼 것이다.


 웹소설 작가가 된 내 모습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 엄마랑 나는 외관상 별로 닮지 않았다. 어렸을 때 나는 진짜 엄마가 따로 있고 지금 엄마는 그저 나랑 내 동생을 키워주는 착한 언니가 아닐까 하는 아침 드라마 같은 상상을 종종 하고는 했더랬다. 간혹 눈썰미가 좀 있는 친구는 입술이 닮았다고 콕 집어서 말해주기도 했다. 입술 말고 또 뭐가 닮았을까 하고 봤더니 하관이 좀 닮은 거 같다. 그래서 노안인 아빠를 닮아도 하관 덕에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하고 봤더니 바로 여전히 로맨스를 꿈꾸는 점이 닮았다.


 현실에서는 똥차만 만났어도 둘보다 오히려 혼자가 편했던 연애 경험이 허다하더라도 소설은 내가 창조자니까 핑크핑크하게 써보겠다. 그렇게 웹소설 작가가 되기 위해 지금의 원고를 잘 마무리하는 중이다. 지금 하는 에세이 마무리 또한 웹소설 작가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에어컨 상단을 열어 필터를 꺼낸다. 에어컨세정 스프레이를 흔들고 냉각핀에 뿌려댔다. 더운데 에어컨이 없으면 에어컨을 사면 되고 에어컨 청소를 안 해서 못 틀고 있으면 청소를 한 후 틀면 된다. 더 이상 원하는 결과를 바라고 기다리며 아직 다가오지 않은 시간에 목을 매지 않는다. 그저 내가 선택하고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그뿐이었다. 나는 작가다. 이미 에세이스트이며 웹소설 작가 데뷔 또한 앞두고 있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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