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아침 풍경

남자는 젖은 발로 춤을 추고

by 나를 아는 사람

일요일 아침 7시 33분. 집 근처 운동장에 마실을 나간다. 가벼운 마음만 준비한 채 고요함을 만나러 간다. 조용한 운동장에서 짧은 네 발로 종종 발걸음을 재촉하는 까만 새끼 생쥐 한 마리를 만난다. 생쥐는 껑충 뛰어도 보고 기웃기웃하며 목적지를 향해 쉴 새 없이 달린다. 기다랗게 연결된 계단 통로에서 위로, 아래로도 가지 못하고 지나간 자리만 계속해서 반복 질주 중이다.


아래로 향하는 계단으로 내려오나 싶어서 유심히 보고 있는데, 기웃거리다 짧은 다리 때문인지 한 칸 아래 계단으로 구른다. 내리막은 겁을 내더니 굴러 떨어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위로 오른다. 생쥐는 조금 전 왔던 길로 다시 달린다. 계단과 계단 사이에 있는 통로 계단을 향해 위로 오르기 위해 껑충 뛰어 본다. 이젠 성공. 계단을 오르더니 사람이 앉는 의자 주변을 여기저기 서성이며 주위를 살핀다. 아마도 쥐구멍을 찾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촉촉이 젖은 운동장 바닥, 나뭇가지, 잔디에 두고 있던 나의 시선을 조그만 생쥐 한 마리가 한꺼번에 빼앗는다. 평소 생쥐 하면 징그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던 나인데 어쩌다 생쥐의 움직임에 빠져 버렸다. 비 내리는 일요일 아침, 한가하게 질주하는 생쥐 덕에 한참을 넋 놓고 있다. 녀석이 참 귀엽다. 그다음 여정이 궁금하긴 한데 그냥 아쉬움을 남긴 채 산책하던 그 길을 다시 걷기 시작한다.


자주 오는 이곳이지만 새롭게 다가온 풍경에 감탄할 즈음. 계단을 올라가서 비를 피하려고 가림막 아래 쌓인 먼지를 닦고 의자에 막 앉자마자 저 아래 한 남자가 입장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슬비 잔뜩 머금은 잔디로. 그는 잔디가 시작되는 곳에서 살포시 신발을 벗더니 술에 취한 듯, 비에 취한 듯하더니 갑자기 뛰기 시작한다. 그의 모습은 조금 전 생쥐가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고 자기의 방식대로 마구 놀던 모습과 순식간에 겹친다.


남자는 허공에 팔을 휘젓고, 몸을 흐느적거리더니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 무도회에 나온 듯 넓은 잔디밭을 누비고 있다. 남자, 맨발, 잔디, 비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의 몸짓에 주변의 공기마저 숨을 멎는 듯했고 난 눈 앞에 펼쳐진 장면에 빠져든다. 생경하고 아이러니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희한한 모습 앞에서 나의 몸도 흐느적거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한바탕 무도회를 관람하고 계단을 내려가자 비에 젖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는 아주 작은 도롱뇽 한 마리, 물에 퉁퉁 부어서 몸통이 훨씬 커져 버린 파리 녀석은 알까? 바로 옆에서 춤추며 흥을 맘껏 발산하고 홀연히 사라진 남자를. 간들간들 덩치 큰 나무들의 어린 가지들만이 비의 소리에 깜짝깜짝 놀란 듯 몸을 움칫거린다.


저 멀리 비바람에 휘날리는 태극기는 제 몸 가누기조차 힘이 드는지 바람결에 몸을 내맡긴다. 먹구름이 서서히 움직인다. 조용히 내리던 이슬비는 점점 요란하게 가림막 지붕을 때리더니 급기야 소낙비가 내린다. 내친김에 거센 바람까지 불어서일까. 우산 아래 숨어 있는 얼굴까지 톡톡 빗방울이 튕겨 들어온다. 어디선가 다시 맨발의 남자가 나타난다.


운동장 가운데 있는 잔디밭을 걷는다. 뛴다. 다시 걷는다. 뛴다. 걷는다. 서서히 뛴다. 몸을 돌려 골대 앞으로 가더니 축구 골대에 골을 넣듯이 다리를 비틀어 본다. 다시 걷는다. 멈춰 선다. 골대 앞에서 ‘앗! 골을 넣는다’ 공은 없고 다리로는 분명. 한 골 넣는다. 잔디에서 나온다. 이젠 마라토너가 출발선에서 뛰기 위해 준비하는 자세를 취한다. 걸어 나온다. 다시 퇴장한다. 어디론가 사라진다. 빗속으로, 알코올 속으로, 아니 세상 속으로.


비를 듬뿍 머금고 배불러 바닥에 바짝 엎드린 잔디는 숨죽여 무엇인가 분명 보았으리라. 나무들은 응집 짙은 초록을 담고 시선이 고정되었으리라. 자연의 풍성함에 저절로 몸이 움직이고 마음이 동화되어 신비로운 세계로 접어든 그를 보았으리라. 한 폭의 인생을 보듯 작은 움직임들이 모여 하나의 큰 그림이 된 장면을.


휘청휘청 바람의 소식을 알리는 나무, 작은 생쥐 한 마리, 비틀거리며 입장한 한 남자가 합쳐진다. 흩어짐이 뭉쳐진다. 빗방울이 튕겨 올라 차오르는 희망을 말하고, 자연이 주는 상큼하고 잔잔함은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다. 고요한 일요일 아침 나는 본다. 푸르름과 기쁨, 행복, 짧은 인생을 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딸, 네가 있는 곳에 우리가 있어